세상에 하나뿐인 가장 따뜻한 맛!
“엄마! 나, 왔어.”
나는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를 부른다. 열쇠 쩔그렁거리는 쇳소리에 엄마가 먼저 문을 벌컥 열어주기도 하던 예전과 달리 엄마는 세상모르고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부좌 틀고 수행하는 스님처럼 다소곳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다.
가방을 엄마 옆에 슬그머니 내려놓고 주방 싱크대 쪽을 빙 둘러봤다.
개수대 안엔 밥공기 하나, 숟가락, 젓가락, 한 세트가 얌전히 놓여있다.
‘도대체 무얼 드신 거야? 물에 말아 드셨나?’ 맑은 물이 담긴 깨끗한 설거지 그릇을 보며 든 생각이다.
가스레인지 위,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뚝배기 뚜껑을 열어보니 작게 자른 햄과 소시지, 김치가 수북하게 담겼다.
“엄마!.”
조금 큰 소리로 부르니 그제야 돌아보는 엄마.
“언제 왔어? 내가 이젠 정말 정신이 없구나. 딸이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듣고.”
“열쇠 있는데 내가 열고 들어오면 되지. 점심은 드셨어?”
“커피 마실래?”
매번 이런 식이다. 엄마는 엄마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엄마 방식으로 해석한다. 물론 청력이 약해진 탓이란 걸 알지만 ‘엄마 또 저런다.’는 원망의 마음이 든다.
“응, 엄마가 타.”
나는 엄마가 쥐고 있던 TV 리모컨을 대신 들고 버튼을 여기저기 누르며 엄마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재밌는 프로 뭐 있나? 엄마는 뭐 봤어?”
“복지사 양반이 어제 소시지 잔뜩 줘서 부대찌개 끓였는데 먹을래?”
주방으로 나가던 엄마가 돌아서며 묻는다.
“커피 마시자며? 엄마 점심 안 드셨구나?”
“내가 이것저것 다 넣고 끓여봤는데 맛은 잘 모르겠다. 요즘엔 맛을 잘 모르겠어...”
“엄마!”
내가 묻는 말에는 답이 없고 자꾸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엄마 때문에 짜증이 잔뜩 섞인 투로 엄마를 부르며 벌떡 일어나 엄마 가까이 갔다.
“지금 밥 안 먹어?”
키 작은 엄마의 풀 죽은 목소리가 어깨 아래서 들린다.
“밥은 조금 있다가 먹고, 지금은 커피 마시자고 엄만 앉아계셔 내가 할게.”
“그래. 오늘은 커피도 안 마시고, 밥도 한 숟가락 안 먹었다.”
“그럼 이건 누가 먹은 거야?”
개수대 안의 그릇을 가리키며 묻는 내게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나야 모르지.”
“에헤~~ 자꾸 거짓말하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엄마는 밥 먹었느냐는 물음에는 늘 ‘한 숟가락도 안 먹었다.’ 거나, ‘언제 먹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라고 밥 안 먹은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정말인 줄 알고 낮에 엄마와 함께 지내는 동생을 오해하기도 했는데 이젠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엄마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얘는 내가 무슨 거짓말을 한다고 그래. 거짓말은 지들이 더 하지. 온다고 해서 밥을 잔뜩 했더니 일주일째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을 안 해. 너희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
엄마 표정을 보니 정말 서운한 얼굴이다. 눈에 눈물까지 글썽글썽하다.
“엄마, 어제는 혜정이가 빵 사 오고, 목요일엔 가람이, 산이가 왔었고, 수요일엔 혜진이, 화요일엔 건웅이, 월요일엔 수민이 하고 수민 엄마가 와서 같이 저녁 먹었으면서?”
나는 엄마에게 가족 단체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이 다녀간 요일까지 세세하게 얘기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정해 놓은 요일에는 할머니와 같이 저녁 시간을 보내며 ‘오늘의 메뉴’라고 제목을 붙인 상차림 사진을 찍어 가족 단체방에 메시지로 올린다.
분명히 어제는 큰 조카 혜정이가 롤 케이크와 우유 사진을 올렸는데 엄마는 일주일째 아무도 못 봤다고 하니, 조카는 도대체 누구랑 빵을 먹은 거지?
한 장, 한 장 사진을 보던 엄마는,
“지들은 매일 이렇게 잘 먹네.”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자리에 눕는다. 사진 속에는 아이들이나 엄마 모습은 없고 음식만 있으니 전, 후 상황과 맥락을 이전 같이 인지하지 못하는 엄마가 보면 마음 상할 만했다.
냉장고 안에서 어제 남은 롤 케이크를 꺼내 자르고, 커피 두 잔을 타서 엄마에게 가져갔다.
“엄마, 커피 마시자.”
정말 신기한 게 엄마는 좀 전에 마음 상했던 것을 그새 잊은 듯 벌떡 일어난다.
“커피 마셔? 이건 웬 빵이야? 니가 사 왔어?”
“응. 이거 조금 먹고 밥 먹자.”
엄마는 빵 한 조각을 순식간에 먹고 주방으로 나가더니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마치 빵을 빨리 먹고 딸에게 밥 차려줄 생각만 한 사람처럼 움직인다.
나는 엄마가 주섬주섬 상 차리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방금 빵 한 조각을 먹었는데도 뚝배기에서 바글바글 끓는 찌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엄마가 차린 상은 지극히 간단하다.
엄마랑 나, 두 사람분의 밥 두 공기와 찌개도 각각 떠서 두 대접. 김치나 그 이외의 다른 반찬은 없다.
“찌개는 그냥 뚝배기 채로 놓고 먹지 뭐 하러 각자 떴어?”
“따로 먹는 게 더 편하지 뭘 그래.”
깔끔한 엄마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다. 다른 건 잊으면서 또 이런 건 안 잊는다.
두부, 감자, 김치, 소시지와 햄이 푸짐하게 들어간 국 대접에서 감자를 하나 건져 먹었다. 달다. ‘어! 이거 감자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엄마를 봤다.
“왜? 짜? 요즘 내가 자꾸 짜게 한다. 그럼 국물은 남기고 건더기만 먹어.”
“엄마, 이거 감자야?”
건더기 사이에서 하얀 감자를 하나 더 숟가락으로 떠서 엄마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아니 고구마야.”
엄마는 엄마 국대접의 고구마를 아주 맛있게 먹으며 말한다. 그러고 보니 ‘부대찌개’라던 엄마의 말과는 달리 이것저것 많이 섞였다. 국물 맛도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놓은 듯하고 내용물 또한 조합이 묘했다. 부대찌개답게 소시지는 또 얼마나 푸짐하게 들어 있는지.
“고구마가 달고 맛있길래 그냥 맛있는 거 다 넣고 끓였어.”
엄마가 이것저것 다 넣었다는 말에 갑자기 냉동실 안에 넣어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생각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냉동실 문을 열었다. 주황색 음식물 쓰레기봉투 입구가 꼭 묶인 걸 확인하곤 다시 엄마 앞으로 와 숟가락을 들었다.
밤늦게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길을 잃을까 봐 음식물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 냉동실 안에 넣어두면 가족 중 누구든 보는 사람이 처리하기로 했었는데, 엄마의 찌개 내용물 조합을 보곤 엄마를 의심한 거였다.
‘나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내가 생각한 대로 그린다.’ 파블로 피카소가 이렇게 말했던 것처럼 엄마도 맛있는 것을 모두 넣어서 남들과 다르게 엄마만의 생각으로 맛을 낸 것이다.
“엄마 잠깐 기다려 봐.”
나는 주방에서 뚝배기를 가지고 와 상 가운에 올려놓고 휴대폰으로 엄마를 배경으로 찌개 사진을 찍었다.
‘고구마가 들어간 된장, 고추장 할머니표 부대찌개!’란 제목으로 가족 단체방에 사진을 보냈다.
‘단짠단짠 조합이 기가 막힘’이라는 부제를 달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