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쪽으로 걷는다

언제나 중요한 건 방향!

by 이경원

일요일 아침 더 이상 누워 있기 싫을 만큼 잔 것 같다. 길게 팔을 늘여 하품과 기지개를 동시에 하며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주방으로 나갔다. 가스레인지 위 노란색 양은 냄비 안에 된장 푼 물이 반쯤 담겨있고, 그 옆엔 나무 도마 위에 칼이 얌전하게 놓였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문이 닫힌 화장실로 다가가 인기척이 있나 귀를 기울여 봤다. 조용하다. 불안한 마음으로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다. 좁은 집 안을 한 바퀴 돌았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덜 깬 잠이 확 달아났다. 현관에 놓인 슬리퍼를 급하게 신고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엄마 집에서 나와 슈퍼마켓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을 때,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 내 팔을 끌 듯이 잡고 물었다.

“혹시, 꽃무늬 바지 입은 할머니 못 보셨어요?”

팔을 잡힌 채 멈춰서 바라본 여인의 행색도 나와 같다. 급하게 나온 모습이 영력 하다. 통 넓은 바지 위에 긴 셔츠를 걸치고, 누워있었다는 표를 내듯 머리 한쪽이 눌려 납작하다. 그 모습을 보고 경황이 없는 중에도 나는 혹시 눌렸을 거라 짐작되는 내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넣어 밖으로 빗질하듯 쓸어내며 어정쩡하게,

“못 봤는데요. 근데 이쪽으로 지나가는 키 작은, 할머니 한 분 못 보셨어요?” 대답과 질문을 동시에 했다.

“아유~~ 저희 어머니가 글쎄 제가 잠깐 화장실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새 밖으로 나가셨지 뭐예요.”


나도 자신과 같은 처지란 걸 직감한 여성이 하소연 반, 변명 반 섞인 대답을 했다. “저희 엄마도 안 보여서....” 나는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만 아는 감정으로 말을 다 마치지도 않고 다른 말을 했다.

“저희 엄마는 언젠가부터 오른쪽으로 기울어져서 걷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 나와 우선 갈만한 데 찾아보고 안 계시면 집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돌며 찾아다녀요. 혹시 모르니까 댁이 어디신지...” 그 여성은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정말 그럴까요?” 묻고는 미심쩍은 표정을 하면서도 급하게 되돌아선다. 아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 집에서부터 다시 찾아 나설 것 같다. 오른쪽으로.

검증된 연구사례가 있는 것도 아닌 말을 믿고 욌던 길을 되돌아가는 심정을 알기에 나는 엄마를 찾아 앞으로 걸으면서도 자꾸 뒤 돌아봤다.


다행히 엄마는 가까운 가게에서 찾았다. 두부를 들고 진열된 과자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엄마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걱정했던 만큼 화가 나서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거기서 뭐 해?” 엄마는 못 듣고 계속 그 자리를 맴도는데 내 목소리에 가겟집 주인이 깜짝 놀라서 쳐다본다. 쳐다보는 눈빛이 마치 '어머니에게 너무 함부로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책망이 섞여서 곱지 않다. 내가 너무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다는 걸, 그리고 그 목소리엔 걱정보다 짜증이 더 많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가겟집 주인의 눈총을 받으며 깨달았다.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주인의 눈총을 뒤통수로 느끼고 애써 부드럽게 말하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언제 왔어? 너 뭐 먹을래?” 엄마는 내가 부른 큰 소린 아예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안 듣기로 작정한 건지, 나를 보자 반갑게 묻는다. 나는 엄마 손에 들린 두부를 받아 들었다. “엄마 과자 살 거야?” “응 너 자고 일어나면 먹으라고. 근데 과자가 너무 많아서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 먹고 싶은 거 집어 봐.” 엄마는 마치 초등학생 딸에게 말하듯 나에게 과자를 고르라고 한다. 그리곤 헐렁한 바지 주머니에서 납작하게 접힌 만 원 한 장을 꺼내 들고 계산대로 걸어간다. “먹고 싶은 거 다 가져와.” 계산대에 서서 아직도 진열된 과자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이번엔 엄마가 크게 소리친다. 나는 바로 앞에 보이는 과자 한 봉지를 들고 계산대로 가면서 투정 부리듯 말했다. “먹고 싶은 거 다 사려면 만 원으로 안 돼.” “왜 그것만 가져와? 몇 개 더 집어 오지.” 엄마는 늘 그렇듯 또 내 말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가게에서 나와 엄마가 사준 과자를 안고 엄마와 나란히 걸었다. 엄마 오른편에 서서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쪽으로 기울어지며 걷는 엄마. 가게에서 엄마 집까지 7, 80m 남짓 거리를 걸을 때도 자꾸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엄마에게 밀려 오른편 건물 가까이 붙어 걷게 된다. 그러면 나는 엄마를 부축하고 조금 힘을 주어 엄마를 길 가운데로 밀어준다. 그러길 반복하며 걷다가 엄마 집을 바로 코앞에 두고 엄마는 걷기를 멈춘다. “여기서 쉬었다 가자.” 마치 먼 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말하는 엄마. 기력이 떨어진 엄마는 그 짧은 거리도 두어 번은 쉬면서 간다. 엄마에겐 그렇게 먼 거리를 딸에게 아침으로 차려줄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려고 길을 나선 것이다.


“가자” 길에 잠시 멈추어 섰던 엄마는 가자고 먼저 말하면서 엄마 집 바로 앞의 오른편 골목으로 돌아선다. “엄마 밥 먹는 손은 무슨 손이야?” “바른손으로 먹지.” 엄마가 오른쪽 손을 들었다. “그럼 이쪽은 무슨 쪽이야?” 방금 돌아선 쪽을 가리키며 묻는 내게 엄마는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바른쪽이지.” “엄마는 바른쪽으로만 걷네.”


엄마는 우리가 말하는 ‘오른쪽’이란 말 대신, ‘바른쪽’이란 말을 평소에도 자주 했었다. 왠지 바른쪽이란 말이 ‘바르다’란 의미로 여겨져서 나는 듣기 좋다. 엄마가 '바른쪽'이라고 할 때마다 기분 좋은 이유가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하니 엄마의 모든 걸음은 항상 바른쪽으로 걸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아마 내 추측으론 엄마의 뇌 회로 중 어느 한 부분이 손상되어 엄마의 균형감각이 무너진 것이겠지만 오른쪽, 아니 엄마가 말하는 ‘바른쪽’으로 걷는 엄마를 바라보는 데 빙그레 웃음이 났다.


일요일 아침 휴양림의 나무 사이를 산책하듯 엄마와 천천히 동네 길을 걷다 보니, 조금 전 집에서 가게까지 엄마를 찾으러 다니며 가졌던 조급한 마음과 원망의 마음이 사라졌다. 이렇게 바른쪽으로 걷다가 혹시라도 꽃무늬 바지 입은 할머니를 만나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