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팔찌

by 이경원

알라딘에게 마법의 램프가 있다면, 엄마에겐 마법의 팔찌가 있다. 알라딘이 가진 마법 램프는 물리적 변화를 주지만, 엄마의 마법 팔찌는 생각의 변화를 주는 효과가 있다.


엄마를 경찰서에서 모시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동생이 엄마를 데려오는 일이 있었다. 아직은 엄마가 괜찮다고 생각해서 걱정하지 않고 지냈는데 엄마를 경찰서에서 데려온 동생이 서둘러 금은방에 가서 엄마 이름과 동생의 전화번호를 새긴 은팔찌를 사서 엄마 팔목에 채웠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가장 빨리 엄마에게 닿을 수 있는 사람은 동생이었기에.


처음에 엄마는 전화번호가 새겨진 팔찌가 싫다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이런 건 할머니들이나 하고 다니는 건데 내가 왜 하냐?” 하면서 팔목의 팔찌를 억지로 당겨 빼려고 했다. “엄마도 할머니잖아. 손주가 여섯이나 있는 할머니!” 동생은 엄마를 어린아이 달래듯 웃으며 기어코 엄마에게 팔찌를 채웠다. “엄마, 나중에 밖에 나가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이 팔찌 보여주고 ‘여기로 전화해 주세요.’ 하면 내가 금방 갈 거야.” 엄마는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 팔찌를 내려다본다. ‘정말 그래?’하는 마음과 ‘믿어도 되나?’ 하는 마음이 얼버무려진 눈빛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팔찌를 시험이라도 하듯 자주 밖으로 나갔다. 그때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받은 동생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려는 것처럼 엄마에게 달려가곤 했다.


엄마는 주말이면 내가 엄마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달려와 엄마의 무용담을 풀었다. “내가 두부 사러 가다가 이상한 델 들어갔잖아. 그래서 이걸 보여줬더니 진짜 선영이가 오더라. 어디서 오는지 글쎄 신기하게 금방 오더라.” 그러면서 팔찌를 소중한 보물 다루듯 옷소매로 문질러 닦는다. 그 후로도 동생은 몇 번 더 엄마를 모시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원더우먼이 되어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렇게 팔찌는 엄마에게 언제든 내 딸이 나를 데리러 온다는 믿음을 주는 마법의 팔찌가 됐다.


엄마의 팔찌는 엄마에게만 믿음을 준 게 아니었다. 나에게도 믿음을 주는 정말 마법을 부리는 팔찌가 되었다. 동생이 모르는 전화번호로 온 전화를 받고 달려가 보면 어느 날은 길에서 낯선 아주머니가 엄마 손을 잡고 서 있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편의점 의자에 앉아 우유와 빵을 먹고 있는 엄마를 볼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고맙다는 구십도 인사를 백 번도 넘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하면서,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전화를 잘해준다.”라고 했다. 편의점에서 엄마를 데려올 때는 영락없이 ‘학생’들의 전화를 받을 때인데, 학생들은 하나같이 모두 동생이 도착할 때까지 엄마 곁에서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고 한다. 동생이 엄마의 손을 잡고 편의점을 나올 때면 엄마 윗도리 주머니에 학생들이 사서 넣어 준 과자가 들어 있거나, 동생과 잡지 않은 다른 손엔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이 종종 들려있었다고 했다. 그리곤 “할머니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도 빼먹지 않는다면서 “요즘 학생들이 친절하고 착해.”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전’ 보다 못하거나, 더하거나 둘 중 한 가지 의미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가 생각하는 요즘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손뿐만 아니라 눈에서도 떼지 못한다. 심지어 분식집에 마주 앉아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앞에 앉은 친구의 얼굴이 아닌, 손 안의 스마트폰을 보느라 시선은 아래를 향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더군다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시대인지라 웬만해선 타인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학생’ 또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엄마를 낯선 곳에서 데려올 때마다 학생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동생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하긴 스마트폰에 빠진 이들이 어디 학생뿐인가?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고개 숙인 어른들도 부지기수인데, ‘학생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아무것도 안 한다.’ 생각한 나는, 내가 듣기 싫어하는 ‘꼰대’라는 걸 인정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전에 내가 가졌던 중, 고등학생들이나 젊은이들에 관한 나의 생각이 극히 단편적이었다는 것을 안 후부터, 요즘 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학생들이 스마트폰 안의 세상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밖의 세상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엄마의 팔찌는 내게도 마법의 팔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