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다시 고쳤다던가?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라고. 잘한 일이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인지기능 저하로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급기야 사고체계가 무너진 엄마는 지금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뇌 속에는 ‘해마’라는 기억장치가 있는데, 나이 들면 ‘해마’가 줄어들어서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이 적절한 기능을 못 하는 것이란 걸 책에서 읽고 놀랐다.
내가 아는 ‘해마’는 바닷속에 떠다니는 용머리를 한 작은 생물이 전부인데, 우리 머릿속에 해마가 있다고? 모르는 게 이렇게 많아도 살 수는 있구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 기관의 모양이 해마를 닮아서 ‘해마’라고 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내가 아는 건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생각들이 자꾸 퍼져나가서 뇌세포를 긴장시키면 치매 걸릴 확률이 조금 낮아지려나?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서 생각의 미로를 배회하다 돌아오곤 한다.
엄마의 치매 덕분에 나는 책을 자주 접하게 됐다. ‘치매’가 어떤 질환이지 궁금해서 치매와 관련된 책을 보기도 하고, 엄마와 보내는 시간을 메우려고 책을 읽기도 한다. 엄마의 치매를 ‘덕분’이라고 한 것은 엄마를 지켜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흔히 현대를 지식의 홍수 시대라고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온갖 정보가 넘쳐나고, 지금 내가 있는 공간만이 아닌, 지구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다. 지식도 편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 손끝으로 지식을 얻는다고 해도 심하지 않을 정도다. 궁금하면 검색하고, 검색하면 빠르게 알려주니까 스스로 학습해서 깨우치려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 연유로 간혹 잘못된 정보를 접하더라도 알 수가 없다. 빠른 것은 문명의 혜택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각이란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다양한 지식은 지혜에 도달하지 못하는 폐해도 적지 않다.
엄마의 치매만 해도 그렇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으로 접한 치매에 대한 증상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기억을 잃은 부모가 한겨울에 얇은 옷 하나만 걸치고 맨발에 슬리퍼로 거리를 배회하다 실종된다거나, 가족을 못 알아보거나, 거친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거나, 벽에 똥을 칠하거나, 등이 매체에서 주로 본 내용이다. 물론 가장 심한 경우의 상황이겠지만 치매 환자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나는, 치매 판정을 받은 그 순간부터 환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도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사라져서 터무니없이 고집을 피우고, 가족들도 못 알아볼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말을 잘못 알아듣고 대화에서 벗어난 다른 얘기를 할 때면 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이해하기보다, ‘또 저렇게 자기 말만 한다. 예전의 엄마가 아니야.’ 하며 걱정이 아닌, 서운한 마음부터 들곤 했다. 미리 가지고 있던 치매에 대한 선입견이 엄마의 상태를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다. 노화가 시작된 내가 시력이 떨어져서 휴대폰 글씨가 잘 안 보이고, 다른 사람이 부르는 소릴 잘 못 들을 정도로 청력이 약해진 것은 당연하고, 엄마의 시력과 청력의 문제는 치매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엄마의 삶은 계속됐다. 때 되면 밥하고, 볕 좋은 날은 창문도 열고, 가끔 친구분을 만나러 택시 타고 외출도 했다. 물론 평소와 달리 행동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리고 친구분과 나눈 대화의 절반 이상은 기억 못 하지만 불편함 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엄마, 혼자 택시 타기 힘들잖아. 가고 싶을 때 얘기하면 태워다 드릴게.” 혹시 밖에서 다니다 길을 잃을까 봐 걱정돼서 말하면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번 더 가서 얼굴 보려고 그러지. 아주 거동 못 하게 되면 그때는 집에 붙어있을 거야. 너희들 힘들게 안 할 거야.” 그러고 보면 엄마는 걱정만 하는 나와 달리 당신이 치매란 것을 받아들이고 나중의 일까지 생각하며 생활하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쇠약해지는 몸 상태도 알고, 친구와 만나 얘기 주고받을 날도 몇 날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움직이지 못하는 당신을 자식들이 보살펴야 한다는 것까지 이미 생각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집에 붙어있겠다는 다짐까지 한 것이다.
치매를 앓는 엄마도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데, 나의 지식은 여기저기 떠도는 정보로 얻은 게 더 많아서 가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치매 걸린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도 거저 얻은 지식인 까닭이다. 어떻게 해야 엄마를 이해하고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