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떼기를 위한...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은 후 나는 자주 엄마를 관찰했다. 엄마의 움직임은 느리다. 안방에서 화장실까지 몇 미터 안 되는 거리도 좁은 보폭으로 한참을 걷는다. 그 모습이 100년쯤 산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행동은 느려도 엄마의 정신은 아직 예전과 다름없다. 간혹 나와의 대화 중에 엉뚱한 소릴 하거나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지치게도 하지만,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다. 당신 집을 떠나지 않겠다는 고집을 부려서 주중 낮 동안은 엄마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사는 동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집을 오가며 식사를 챙긴다. 회사 출근해야 하는 나는 주말과 휴일은 엄마 집에서 1박 2일을 보낸다. 그 이틀 동안 나는 엄마를 보살피는 게 아니라 관찰한다.
엄마의 하루는 지극히 단순하다. 자고, 먹고, 자고, 먹고, 그사이에 ‘씻고’가 있다. 엄마는 결벽증이라고 할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다. 우리 형제들은 어렸을 때부터 씻지 않으면 굶는 것으로 알았다. 지금 같으면 ‘아동 학대’라 할 만큼 우리가 씻을 때까지 엄마는 밥을 안 주기도 했고, 빨리 씻으라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씻는 것엔 엄격한 엄마였다.
그런 오랜 습관이 요즘 엄마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잠깐 십 분이라도 눈을 붙였다 싶으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한다. 잠깐 잤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꼼꼼하게 시간을 들여 세수한다. 세수한 후엔 바로 주방으로 가서 밥 차릴 준비를 한다. 엄마와 지내는 동안 나는 하루 세끼 이상을 먹는다.
엄마가 상 차릴 준비를 하면 나는 훈련이 잘 된 조수처럼 작은 상을 안방으로 가져다 놓는다. 처음 몇 번은 안 먹는다고, 그만 먹자고, 금방 먹었다고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엉거주춤 주걱을 들고 서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자신이 해주고 싶은 걸 마다하는 딸에게 서운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살았을 때 실컷 먹어. 나 죽으면 누가 밥 차려줄 줄 아냐?’ 엄마는 냉정하게 밥을 거부하는 딸 들으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주걱을 개수대로 던져버렸다. 같은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된 후 나는 엄마의 밥상을 말없이 받게 됐다. 자신의 힘이 남아있는 한, 마지막 한걸음 움직일 기운만 있어도 엄마는 밥을 차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이 엄마에게 받는 마지막 밥상이란 생각으로 하루 몇 번씩 밥을 먹었다.
“밥에 뭐 들었어?”
밥그릇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슬그머니 밥 한 숟가락 떠내 휴지에 싸서 밥상 아래 내려놓는 나를 보고 엄마가 묻는다. 머리카락 들었다고 하려다 “응” 짧게 대답하고 국 대접에서 국물 한 숟가락을 떴다. “내가 깨끗이 씻는다고 씻었는데 머리카락 들어갔나?” 미안한 얼굴로 내 눈치를 보는 엄마. 눈치 보는 엄마가 안쓰러운 마음과 달리 입맛은 떨어졌다.
엄마와 지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선입견이란 게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지금도 그렇다 이전 같으면 밥이나 국에서 머리카락이 나와도 ‘엄마 머리카락인 데 어때’하는 마음으로 밥그릇에 들어있는 머리카락을 건져내고 먹었을 거다. 그런데 엄마가 치매란 걸 알고 난 후부터 밥상 앞에 앉으면 혹시 다른 게 들어가지 않았는지 제일 먼저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엄마가 아무리 하루 몇 번씩 세수를 해도 음식에서 머리카락이나 다른 이물질이 나오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차마 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다. 마음으론 엄마가 이해되는데 입에선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입 안에서 밥알이 맴돌다 겨우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안 넘어가는 밥을 꾸역꾸역 먹으려니 눈물이 났다. “무슨 걱정 있냐?” 엄마는 밥 먹다 휴지에 코를 풀어가며 우는 내게 걱정스럽게 묻는다. “운다고 해결될 일이면 걱정 안 해도 된다. 그저 밥 잘 먹고 아프지 않으면 다 괜찮아진다.” 엄마는 내가 왜 우는지 모르고 나를 위로한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엄마가 다행이면서 속상하다.
엄마는 내 걱정을 하지만, 나는 내가 걱정이다. 이런 날들이 되풀이되면 언젠가 나는 엄마를 멀리하고 싶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내 곁을 떠나면 내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엄마를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도 나도 말없이 식사를 마쳤다. 밥상을 치우고 나서도 엄마는 커피 탄다고 느릿느릿 주방에서 안방 사이를 오간다. 그런 엄마를 보다가 문득 ‘엄마가 지금 나랑 정 떼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해도 하고, 오해도 한다. 나는 엄마의 치매를 ‘정 떼기’로 해석했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정’ 떨어지면 미련 없이 헤어지고 싶다. 부모, 자식 간에 정 떨어질 일이 있을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아무리 망나니 같은 자식이어도 소중하고 자신을 버린 부모라도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건 천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끊어지고 나면 상심의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치매로 인한 환자의 행위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픔의 시간을 보낼 자식들의 아픔을 줄여주기 위한 부모의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엄마를 관찰하며 얻은 결론은 이렇다. 자신이 떠난 후에 자식들이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 평온한 날들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는 치매란 질환을 빌려 정을 떼려는 것이다.
그러니, 크게 심호흡 한 번 하고 잠시만 물러서서 지금 내 앞의 부모를 바라보라. 끝 사랑을 위해 조용히 달려가는 부모의 마음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