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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Oct 05. 2023

유능한 작명가

"엄마 나 누군지 알아?"

"할머니 나는 누구야?"

온 가족이 엄마를 가운데 두고 내가 누구냐고, 이름이 뭐냐고 서로 자기 이름이 먼저 불리길 바라는 눈빛이다. 가족들은 모이기만 하면 엄마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앞다투어 묻곤 한다. 

마치 "내가 누군줄 아냐?"고 갑질하는 진상고객 같은 말투지만,  마음은 다르다. 

엄마의 정신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멀리 갔는지 알아보려는 불안함이기도 하고, 좀 더 그럴듯하게 해석하자면  시인의  소박한 마음처럼 엄마에게 이름이 불려져 엄마의 꽃이 되고픈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누군 누구야 딸이지!"

"큰딸? 작은 딸?"

"할머닌 딸이 먼저구나!"

조카가 농담인 듯 진담처럼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뭐가?...저기.. 너는...그.."

엄마는 조카의 서운함을 풀어주려는 듯 기억을 더듬지만 여간해서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 것 같다.

예전엔 없는 이름도 지어내던 엄마였는데.

 


“언니, 언니! 드디어 알아냈어.”

병원 환자복을 입은 손님들에게 주문한 치킨을 가져다주고 온 동생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밝은 얼굴로 호들갑을 떤다.

“뭐를?”

튀김기 앞에서 튀겨진 닭을 꺼내던 엄마가 돌아보며 물었다.

“있잖아.. 저기 멀쩡한 환자.”

거기까지만 얘기를 듣고도 무슨 소린지 알 것 같았다.     


스무 살 후반에 나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치킨집을 했다. 동생과 내가 다니던 회사를 나오며 받은 퇴직금을 모아 동네에서 간단한 안주와 맥주, 치킨 등을 파는 가게를 시작 했다.

남동생은 군에 갔고, 아버진 일 가시기 전,  새벽마다 가게에 들러 간단하게 청소를 해주시고, 일을 마치면 또 가게에 와서 마지막 청소까지 거들어 주시곤 하셨다. 무엇보다 엄마가 남의 집으로 일을 가지 않아도 되는 게 너무 좋았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우리 삼 모녀는 온종일 함께 지냈다. 


나와 엄마가 번갈아 닭을 튀기고, 동생은 가게 안의 손님들 주문과 배달을 맡고, 설거지는 보는 사람이 그때그때 했다. 바쁜 날은 바쁜 대로, 한가한 날은 한가한 대로 엄마와 함께 있으니 손님이 많거나 적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상가가 즐비한 곳도 아니고, 동네 한가운데 도로 한 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가게라 처음에는 하루에 닭 10마리도 못 파는 날이 많았지만, 다행히 치킨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배달 주문도 늘고, 단골손님도 생겼다.


우리 가게 앞에는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정형외과가 하나 있었는데 병원 저녁식사 시간이 두어 시간쯤 지나면 정형외과 환자들이 줄지어 가게로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교통사고 환자들이 많았던 정형외과여서 위장은 이상이 없으니, 출출한 시간에 솔솔 풍기는 닭튀김 냄새의 유혹을 물리치긴 어려웠을 것이다.

어느 날은 가게 안에 온통 환자복을 입은 손님들로 꽉 차서 마치 병원의 휴게실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어쨌든 환자들은 우리 가게의 VIP고객이었다.


그렇게 환자들이 자주 오면서 장기 환자들은 가끔 외상을 하기도 했는데 10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갚아서 큰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 삼 모녀가 융통성이 없는 관계로 외상 손님들의 얼굴은 알고 있으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세상물정 웬만히 알 만큼 산 지금이라면 당연히 물어봤을 터인데, 당시에는 순진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아무튼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발휘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처음 한, 두 명은 기억에 의지해 외상 거래를 했지만, 외상 손님이 늘어나니 기억에만 의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 엄마가 ‘외상 장부’라고 하면서 우리 앞에 척! 하고 내놓았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외팔이 닥1 콜라1

외지팡이 양반 맥주1

쌍지팡이 닥반 맥주2     


이미 연상되듯, 외팔이는 한쪽 팔에 깁스한 환자, 외지팡이는 목발 하나 짚고 오는 환자, 쌍지팡이는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오는 환자를 지칭한 거였다.

나와 동생은 엄마의 기발한 작명에 배를 잡고 웃었다.     

초등학교 3학년 중퇴인 엄마는 한글 맞춤법을 제대로 쓸 줄 몰라서 닭을 닥이라고 썼지만, 우리는 그마저도 정겹게 느껴져 굳이 고치지 않았다.

다행히 엄마의 용한 작명 덕분에 많은 환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물어보는 번거로움 없이 외상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정말 엄마도 난감할 만한 손님을 만났다. 환자마다 각자 보이는 개성(?)대로 이름을 지어 외상장부를 만들었는데, 새로 들어온 두 사람은 목발은커녕 붕대 하나도 안 감고 있어서 환자복만 아니라면 병원에 왜 왔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

생각다 못해 한 사람은 엄마 표현대로 눈이 부리부리 하다고 해서 ‘딱부리’라고 지었는데, 한 사람은 영 아리송한 채로 여러 날을 올 때마다 주의 깊게 살펴보기만 하던 터였다.


그런데 드디어 동생이 알아냈다고 환호성을 지른 것이다. 엄마도 못 푼 난제를 풀었는데 얼마나 홀가분했겠는가? 나는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가 아프데? 물어봤어?”

“아니!”

동생은 단호하게 대답하고 조금 뜸을 들이더니

“우리가 키가 작으니까 그 사람 서 있는 것만 봐서 그렇지 내가 테이블에 콜라 내려놓으면서 보니까 그 사람 머리 가운데 붕대 붙이고 있더라!”

동생은 아주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키가 큰 멀쩡한 환자는 늘 다른 환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먹거나 마셨기 때문에 우리를 내려보면서 주문을 했었고,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부분만을 관찰했으니 정수리의 붕대가 안 보인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날은 가게 안이 한가했었는지 아리송한 환자가 앉아서 음식을 먹던 중이라 동생의 눈에 상처부위가 보인 것이었다.


동생이 말을 마치자마자 엄마는 재빨리 외상 장부를 꺼내더니 커다랗게 써넣었다.

‘댑통’(땜통)     

확실한 외상거래 고객 한 명을 더 확보한 우리는 그날 장사를 마친 후, 남겨놓은 치킨 한 마리를 가운데 두고 동생의 대단한 발견과 엄마의 신비한 작명 능력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느라 늦도록 즐거웠었다.


의외의 순간에 순발력을 발휘하던 엄마는 이제 없다. 대신 고객 숙인 엄마는 애꿎은 옷소매만 손가락에 억지로 감았다가 풀기를 반복하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다. 아마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궁리 중이지 않을까?

"엄마 예전에 우리 치킨집 할 때처럼 이름 지으려고 그러는 거지? 이번엔 뭐라고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려나?"

꼼지락 거리는 엄마의 손을 잡고 기다려 본다.

눈을 반짝이며 입을 달싹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옛 기억이 피어나는 것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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