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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Aug 30. 2023

아저씨, 저 여기서 내려주세요.

마음대로 내릴 수 없는 인생버스

  더 이상 엄마 혼자 생활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동생과 상의 후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동생 집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우리 집에서 엄마를 모시기로 했다.      


토요일, 동생 집에서 저녁을 먹고 엄마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몇십 년 만에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 창밖을 보며 감탄을 연발한다.

“아이구, 무슨 꽃이 저렇게 이쁘냐? 이 추운데도 꽃이 피었네!”

엄마의 춥다는 말에 운전하던 남편이 에어컨을 냉큼 끄고 창문을 내렸다. 해는 떨어졌어도 낮 동안 달궈졌던 세상의 뜨거운 바람이 훅! 얼굴을 덮친다.     


후텁지근한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땀으로 끈적해진 얼굴에 달라붙어 성가셨다. 내 쪽의 차창 문을 올리고 엄마 쪽의 차 창문도 올려주려고 하니, 엄마는 차창에 얼굴을 내밀다시피 바짝 다가앉아서 경치 구경에 정신이 없다.

“엄마 안 더워? 뜨거운 바람 들어오는데...”

“니네 집이 이렇게 멀구나! 한 시간은 됐지?”

“차 탄지 십 분도 안 됐구만. 십 분만 더 가면 돼. 자리가 불편해 엄마?”

“그나저나 돈이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가슴에 끌어안고 있던 보따리를 풀고 뒤적이기 시작한다.


내 물음에 대답은 안 하고 풀어헤친 보따리 안에 차곡차곡 접어놓은 옷가지 사이사이에 일일이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는 엄마.

“엄마 뭐 찾아? 내가 찾아줄 게 이리 줘 봐.”

내가 보따리를 집으려 하자 엄마는 

“가만있어 봐. 내가 분명히 여기에 넣었는데.. 또 누가 가져갔나 보다.”

짜증 섞인 말을 하며 내 도움을 거부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더운 바람을 참느라 나도 슬슬 짜증 게이지가 올라가던 참이어서 엄마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심통이 났다.


“그러니까 너무 잘 숨겨도 안 된다고 했잖아. 뭐야? 뭘 찾아?”

“돈이 없어졌다니까! 무슨 놈의 집구석에 도둑놈들만 사는지 자고 나면 없어져.”

엄마가 ‘돈이 없어졌다.’고 하기 시작한 건 벌써 오래전부터 라 놀랍지도 않다.

“근데 지금 돈이 왜 필요해? 뭐 사게?”

“택시비 내야지!”

엄마는 돈이 없어져 속상한데 자꾸 말 시키는 내가 귀찮아서 그러는지 거의 악을 쓰듯 말을 했다.

“엄마! 이거 우리 차야. 이 서방이 운전하잖아.”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애써 소리를 낮춰 천천히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같이 큰소리를 내면 엄마와 같은 상태의 환자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화를 낸다고 받아들인다는 얘기를 지인에게 들었던 게 생각나서 참 다행이다.     

“엄마, 선영이네서 밥 먹고 지금은 우리 집으로 가는 중이야. 오늘 하고 내일은 우리 집에서 잔다고 했는데 잊어버렸구나?”


엄마는 내 얘기는 전혀 듣지 않는 낌새다. 무릎 위에 놓았던 보따리를 옆으로 내려놓고 당신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연신 중얼거린다.

“아이 참 큰일 났네. 돈이 없어서 어떡하지?”

급기야 운전석 의자 등받이에 매달리며 두 손으로 등받이를 잡고 애원하듯,

“아저씨! 저 여기서 내려주세요.”


나는 화를 내며 소리치던 엄마의 돌변한 태도에 놀랐다가, 등받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내려달라고 부탁하는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왠지 그 상황이 우스워서 웃고 말았다.     

운전하는 남편은 뒷좌석에서 아옹다옹하는 모녀의 얘기를 들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따라 부르느라 자신의 등 뒤에서 내려달라는 장모의 애원을 못 듣고 앞만 보고 달린다.


“아저씨 제가 돈이 있는 줄 알고 차를 탔는데 글쎄 누가 가져갔는지 돈이 하나도 없어요. 죄송하지만 여기서 내려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자신의 노래에 심취한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런 사위의 등 뒤에서 엄마는 예전의 야무진 장모의 말투로 점잖게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지금, 이 순간이 딱 그렇다.

엄마의 상태만 아니라면 시트콤의 한 장면으로 분명 웃고 넘어갈 상황인데, 엄마가 환자라는 점이 맘 놓고 웃지 못하게 한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웃프다’란 말을 이렇게 실감한다. 웃는 입꼬리를 타고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한 뼘도 안 돼 보이는 엄마의 어깨를 가만히 안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택시비 냈어.” 일단 엄마를 안심시켜야 했기에.

“그래요?  너무 고마워서 어쩌나. 고맙습니다.”

엄마는 앉은자리에서도 일어설 듯한 몸짓으로 나에게 고맙다며 머리를 숙였다.

택시비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 잠시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초면에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운전석의 남편에게 말했다.

“기사님, 아직 멀었나요? 할머니가 지루해하시네요.”     

엄마랑 지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희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겠지만, 원래 삶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아주 오래전 ‘저 이번에 내려요’라는 상큼한 TV 광고를 떠올리게 하는

“아저씨, 저 여기서 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웃음이 난다.

‘그래 엄마! 인생버스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이렇게 웃으며 살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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