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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인지 상인지 모를,

by 단어

진진은 오늘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바퀴 달린 의자에 올라가 일을 하다가 그만 넘어지고 만 것이다. 그 의자에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20번은 넘게 했는데 오늘은 무사히 발부터 착지하지 못하고 엉덩이부터 착지해 버렸다. 아픈 엉덩이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른다. '으아아아악!' 물론 속으로 지른다. 밖에는 손님도 있고 다른 직원들도 있으니 저렇게 크게 소리 지를 수 없다. 의자에서 떨어진 것뿐인데 마치 63 빌딩에서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새삼 번지점프를 도전하는 이들이 대단해진다.

진진은 오늘 아침 오랜만에 성경책을 펴 읽었다. 눈을 뜨고 아침을 먹은 뒤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인지는 잘 모른다. 오늘 읽을 말씀은 '욥기'.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하는 아주 신실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런 욥를 아끼신다. 욥은 재산이 아주 많다. 자식들도 많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은 욥의 모든 재산과 가족과 건강마저도 다 거둬들이신다. 욥은 처음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듯 하나 나중에는 결국 원망하며 묻는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나에게 이렇게 벌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나님은 명확한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세상 만물이 이 세상에서 운행되는 여러 장면을 보여주신다. 그러고는 욥에게 묻는다. "너는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느냐?" 욥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높이며 찬양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다시 복을 주신다. 예전보다 두 배로 복을 주신다. 욥기에서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 내가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언제든 폭풍우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욥이 모든 재산과 가족을 잃은 것이 욥이 잘못해서 벌을 받은 것이 아니듯이 두 배로 복을 받은 것도 욥이 잘해서 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 그저 하나님의 크나큰 통치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

진진은 쓰라린 엉덩이를 문지르며 생각한다. 오랜만에 성경책을 읽었으면 상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벌을 주시지... 아참, 잘하고 못해서 상을 주고 벌을 주는 게 아니라고 했지. 근데 아무래도 엉덩방아는 벌인 것 같은데.... 진진은 벌인지 상인지 알 수 없는 엉덩이의 아픔을 참으며 일을 한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혁이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투덜거린다.

"나 오늘 의자에서 넘어져서 엉덩방아 찧었어! 아무래도 멍든 것 같아. 발목도 좀 아픈 것 같고?"

그럼 수혁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진진을 나무란다.

"조심했어야지! 또 다쳤어? 으이구...여튼 하루도 멀쩡한 날이 없다 없어!"

진진은 계속 수혁이에게 하소연을 한다. 엉덩이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발목도 아프고, 집에는 아무도 없고.... 수혁이 앞에만 서면 진진은 세상 힘들고 불쌍한 사람이 된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닌데. 진진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오바했나 싶지만 그냥 오늘은 불쌍한 진진이 되기로 하며 넘어간다. 수혁이 잠시 쉬러 간 사이에 진진은 친구와 카톡을 한다.


"나 오늘 엉덩방아 찧었어. 엉덩이에 금 간 거 아닐까?"

친구는 카톡을 보고 답한다.

"내가 호~해줄게. 나는 어제오늘 세상이 나를 너무 괴롭혀서 길에서 울었어."

진진은 답한다.

"헉 너도 내가 호~ 해줄게. 그런데 나는 엉덩인데 괜찮겠어? 감당 가능해?"

친구는 엉덩이는 좀 고민을 해봐야겠다며 진지한 답을 내놓는다.

애정과 개그 그 사이 어딘가의 대화 속에서 진진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렇게 웃고 나니 엉덩이의 아픔이 좀 가신듯한 기분이 든다. 호~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엉덩방아를 열 번은 더 찍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친구의 눈물도 호~한 번에 날아가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수혁이가 가고 친구가 가자 마침내 엄마가 온다. 띡띡띡하고 도어락 소리가 들린다. 진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오늘 넘어져서 엉덩이 다쳤어.... 멍든 것 같아...."

엄마는 얼굴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는 진진의 몸 여기저기를 살핀다. 그러고는 근육통 약과 파스를 준비한다. 자고 일어나서도 아프면 병원에 가보자는 말과 함께. 진진은 약을 먹고 파스를 붙인 뒤 방에 누워 드라마를 본다. 송강의 잘생김에 감탄한다고 정신없을 때 밖에서 진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진, 자니?"

"응? 나 아직 안 자지~"

엄마는 진진의 방에 들어와 진진의 침대에 앉는다. 그러고는 기도를 한다. 지금까지 안 다치고 안전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하고, 오늘 넘어졌어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고, 넘어지고 나서도 오늘 할 일들을 모두 무사히 마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진진의 아픈 곳도 다 낫게 해 달라고. 진진은 참 이상한 하루라는 생각을 한다. 벌 같은 엉덩방아와 상 같은 수혁이의 걱정과 친구와의 대화와 엄마의 기도. 벌 같기도 상 같기도 한 오늘을 떠올리며 진진은 다시 송강의 얼굴에 집중한다. 내일아침이면 진진의 엉덩이는 다 나아있을 것이다. 진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다시 벌인지 상인지 모를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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