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전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생존하기 위해 언제나 세상의 '빈칸'을 채워왔다.
빈칸을 채우지 않고서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었으니까.
/ <일상의 빈칸>. 최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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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퇴사라는 소실점에 도착했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시작도 나름 부푼 꿈을 가지고 시작한 하나의 점이었다. 남들 눈엔 부족할지라도, 그 점 하나 찍자고 나름 아등바등 간신히 해낸 작고 귀엽고 반짝이는 작은 별 같던 점.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별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했고, 지나치게 뜨거웠다. 작은 별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거대한 항성이었다.
어쨌거나 점조차 없던 시기는 말 그대로 텅 빈 시기였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다. 기억에 남은 게 없다. 20대 중후반 4여 년간 공무원 공부를 했는데, 문제는 ‘하기’만 했다. 정확히는 앉아있기만 했다고 해야 할까? 죽어라 공부하지도 않았고, 한량처럼 놀지도 않았다. 그래서 추억, 경험, 경력, 자격증, 즐거움… 어느 걸로도 빈칸을 채우지 못했다. 집 근처의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0원인 저렴한 카페에 가서 죽치고 앉아있던, 무색무취한 뿌연 새벽안개 같은 기억이 전부다.
요즘에야 공시 취준생이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지만,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해서 내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가 ‘불합격’이라 더더욱 서럽다. 열심히 안 한 도둑놈 심보라도 서러운 건 서럽고, 시간이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니까.
공무원 공부를 그만둔 뒤, 4여 년의 시간을 무마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20대 후반 4년은 인생을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시간처럼 느껴졌다. 뒤늦은 진로 변경의 모든 선택 기준은 ‘날린 시간을 무마할 수 있나.’가 되었다. 공무원이 되는 데 실패했으니, 그와 비슷한 직업이라도 가지면, 나름 공무원 공부 기간에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야 그나마 남들에게 그럭저럭 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성 따위 따져보지 않았다. 공공기관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어디든 ‘나를 받아주기만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지원했으니, 업무 내용이나 조건을 따져볼 사치를 부리지 못했다.
저를 뽑아만 주는 곳이 제 천직일 곳입니다! 꿈을 그곳에 맞추겠습니다!
미래 비전은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그 회사에 맞추었다.
원래 꿈은 창조하는 거죠. 요즘 많은 조직이 원한다는 창조형 인간이 바로 접니다.
인턴 경험도, 봉사활동 시간도 없었던 나는 간신히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이제야 막 흐릿한 점 하나가 찍힌 기분이었다. 너무 늦었다. 불안했다. 4년 불합격에, 1년 다시 취업을 위해 공부한 시기까지. 날린 시간을 채워야 했다.
샤워할 때 시사 라디오를 듣고, 출퇴근길에는 경제 라디오를 들었다. 트렌드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에 온갖 문화, 경제, 시사 이메일 구독 서비스를 신청했다. 아침에 열어본 메일함에는 온갖 광고와 뉴스레터, 업무 메일이 뒤죽박죽 쌓여있었다. 하루 종일 소리가 끊기는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징그럽게 뒤엉켰다.
이번에는 저번 선택을 무마하느라, 또 이번에는 그전 선택을 무마하느라, 늘 과거를 무마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삶에 무의미한 빈칸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빈칸을 채워야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그렇게 채우고 채우는데... 대체 언제쯤 과거를 다 채울 수 있을까. 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일까. 진짜 이것만 하면 다 무마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끝이 나지 않았다. 과거를 무마하기 위해 다시 현재를 날렸으니, 또 그걸 무마해야 하는 악마적인 뫼비우스의 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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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되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평일 대낮. 더는 사무실에 있지 않다. 앞으로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빙글빙글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원을 그린 건 아닐까. 마치 굴레를 돌리는 햄스터처럼, 나름 애쓰며 산 것 같은데 왜 제자리지?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바닥 장판을 더듬어 핸드폰을 집어 올렸다. 아, 출석 체크해야지. 하루 50원을 벌 수 있는 어플에 들어가 출석을 한 후, 핸드폰 맨 위 상단에 손가락을 대고 쭉 내리자 온갖 광고가 쌓인 팝업창이 내려왔다. 그중, 하나 ‘(입금)’으로 시작하는 창이 눈에 들어왔다.
퇴직금이 입금되었다는 안내였다.
기본급 수준의 임금을 악착같이 모은 통장 잔액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퇴직금까지 더해진 숫자가 보였다.
한 손에 들어오는 스마트 폰, 이 손바닥만 한 화면에 보이는 이 숫자가 시간을 지나왔다는 유일한 객관적 징표라니. 이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 어, 나쁘지 않네.
모 감독이 배우가 핸드폰을 보며 웃어야 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찍기 위해, 배우가 핸드폰을 보는 순간 ‘2천만 원 줄게’라고 문자를 보냈다는 일화가 떠올라 웃고 말았다. 웃음이 난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다시 웃었다.
제자리로 돌아온 원의 길이 아니었다는 흔적을 이 조그마한 숫자가 보여주고 있다. 큰 금액은 아니고, 그럭저럭 백수로 일 년 정도는 간신히 지낼 수 있는 정도였다. 남들 눈엔 부족할지라도, 작고 귀엽고 반짝이는 작은 별 같은 숫자.
누군가는 수치화된 삶에서 더 큰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증거를 눈앞에 보여줘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간이구나. 퇴직금을 파킹통장에 옮기며 생각했다. 내가 쌓아온 시간이 입금되어, 다시 무마의 시간을 살 기회가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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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무마하기 위해 산 시간이 억울했다. 그런데 과거를 무마하려고 아등바등거리던 시간, 나도 모르게 나아가고 있던 걸까. 과거라는 놈에 등 떠밀려서 일지라도 어떻게든 비뚤비뚤한 선을 그어 왔던 거지. 과거를 무마하고, 다시 그 무마했던 시간을 무마하는 방식을 찾아가면서.
꼭 빈칸을 꽉꽉 채워야만 할 필요는 없다. 얼기설기 대충 작은 수치 하나로 정신 승리를 하고, 채웠다 치고 나아갈 수도 있는 거다.
4년이라는 퇴사 이전의 시간. 이번에는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만 남은 것 같지 않다.
하긴, 물가가 올라서 이제 시원하게 먹으려면 2,000원은 되어야 하니,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