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방계 소녀 Aug 08. 2024

잠시만요 고객님 선불입니다

Life is pre-paid.


당장은 사알짝 아쉽지마는 지나고 보면 그게 옳았던 선택들이 있다. 손만 뻗으면 당장에라도 잡을 수 있는, 지금 눈앞에 놓인 걸 조금씩은 포기하는 법도 배워 나가는 게 어쩌면 삶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진정 공짜는 없다는 건 살아봐야, 아니 후회해 봐야지만 얻을 수 있는 값비싼 혜안이니까. 이를테면 꼬치를 거꾸로 잡고 먹어대는 거, 급하다고 쑤셔 넣어봐야 정작 입에 남는 건 없고 애꿎은 목젖만 자극할 뿐이다. 어찌 됐건 간에 우리는 그 값을 언젠가는 치러내야 하니까. 선불이든 후불이든 간에. 차라리 피라도 안 보면 무지 다행인 거고. 


지가 필경사 바틀비도 아니면서 어째 갈수록 하지 않는 일만 더 늘어가는 기분이긴 하지만 그게 영 나쁘지만은 않다. 그건 이제야 나를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는 뜻이고, 그만큼 나를 더 지킬 줄도 안다는 거니까. 이제는 예전만큼 벌지 않아도 나만큼은 더 행복하다. 물론 와이프 생각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나를 상하게 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나 자신이었다. 단지 우리는 언제고 탓할 누군가를 필요로 할 뿐인 거고.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해가듯이 이제는 나도 슴슴한 평양냉면을 즐길 줄 알게 된 것뿐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이제는 그럴 때도 된 거다. 


지금 내 선택과 노력들은 대게 예전처럼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들이다. 그땐 아무렇지 않은 듯 쉽게 잘만 해오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가 않고, 예전엔 한없이 어려워 보이던 것들도 이제는 마냥 어렵지만은 않게 보이는 것도, 단지 내가 바라보는 관점이 변해서일 거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내가 바뀌지 않는 이상은. 예전에 그리던 반드시 젊게 살아야지 하던 다짐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때에 맞는 시절 낭만이란 엄연히 존재하는 거니까.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은데. 


이제는 그저 제값을 제때 혹은 가능하다면 운이 따라줘서 서둘러 치르고픈 바램뿐이다. 50대엔 50대처럼 살고, 60대엔 또 그에 걸맞은 낭만을 즐기면서 그렇게 세상 이치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순순히 늙어가고 싶은 게 지금 내 솔직한 심정이다. <초보 노인입니다> 괜스레 이런 책도 사들이기 시작했다니까. 물론 당장 읽을 것 같진 않지만, 언제고 읽고 싶어질 것만은 같아서. 엄마도 사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표정과 성조가 없는 텍스트란 자칫 위험한 것이라 내가 읽어보기 전까진 드릴 수가 없다. 하물며 통화랑 카톡만 해도 해석의 여지가 이-만큼이나 큰 법이라. 


슬프지만 울 엄마도 벌써 애기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사랑해 엄마♡ 남은 인생은 엄마가 살고자 하는 방향대로 살아가시기를. 어차피 말 안 듣는 아들은 벌써부터 연습 중이니까, 내 걱정은 말고. 우리 아들은 뭘 해도 다 잘 할 거야 라던 엄마 말처럼 이제는 남들도 다 그럴 거래. 




이전 06화 그날이 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