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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방계 소녀 Aug 22. 2024

등산은 싫지만 트레킹은 괜찮아

난데없는 해파랑 소리

요즘같이 재미진 게 넘쳐나는 세상에도 굳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유난히 집중력이 뛰어날 것 같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가 않다. 읽다 보면 뜻밖에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하다못해 언급된 다른 책만 하더라도 잊기 전에 장바구니에 담아놔야 하고. 책장이 늘 부족한 이유는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뭐 언젠가는 어련히 다 읽겠지. 그 외에도 영화랄지 지명이랄지 읽다 말고 검색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김미옥 신간 두 권을 읽다 보면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몇 있는데, 조정선 PD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데라며 검색을 해보니 학창 시절에 내가 알던 MBC라디오 나서기 PD가 맞더라. 책도 냈다는 걸 안 이상 옛정으로라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걷는 책도 읽는 책만큼이나 사유적인지라 나쁜 경우가 없기도 했고. 한국에도 이런 길이? 해파랑길 750km의 존재도 그 덕에 처음 알게 되었다.


<퇴직, 일단 걸었습니다.> 읽다 보니 어느덧 해파랑길 27일째, 드디어 트레킹 종료. 흠. 보지 말아야 할 걸 봐버렸구나. 험한 것이 나와부렀어. 더군다나 이건 그냥 걸었습니다도 아니고. 흠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주문한 해파랑길 스탬프북을 기다리며 전체 구간 지도를 굳이 프린트까지 해서는 째려보고 있더라. 고심해서 샀던 신발이랑 배낭이 드디어 그 소임을 다 하겠구나. 비록 산티아고는 아니지만서도.


그래, 걸어 보자. 갑자기 떠오른 꿈이긴 하지만 역시나 그냥 꿀 수만은 없어서 알아볼 게 태산이네. 이마저도 결국엔 줄이는 게 관건이겠지만 선구매 후커트, 우선은 먼저 사들여야 되는 슬픈 뇌구조. 요즘엔 실로 물건의 명칭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다. 몰라서 못 찾는 물건은 있어도 없는 물건은 없을 만큼 어지간한 제품은 이미 다 나와 있으니까. 그래서 하이킹? 트레킹?



하이킹 hiking

명사 심신의 단련이나 관광 따위를 목적으로 걸어서 여행하는 일.


트레킹 trekking

명사 심신 수련을 위해 산이나 계곡 따위를 다니는 도보 여행.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로, 하루에 15~20킬로미터 정도 걸으며 야영 생활을 한다. 



트레킹의 정의에 거리까지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하지만 그보다는 편의상 출발하기 전 마음가짐에 따라 구분하는 것도 괜찮겠다. 마냥 설레기만 한다면 하이킹, 조금이라도 긴장된다면 트레킹. 등산이랑 등반도 엄연히 다르다. 사족을 요한다면 등반. 당연히 자신은 있다. 산티아고처럼 비행기를 타고 멀리 해외를 가는 것도 아니니까. 더군다나 반은 경상도기도 하고. 등산은 싫지만 트레킹은 괜찮아. 


힘든 일일수록 더욱이 혼자 해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는 가뜩이나 심플해진 인간관계인 데다 괜한 절연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무래도 조만간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하는 1코스부터라도 좀 걸어봐야겠다. 몇 코스 돌아보면 계산이 서겠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얼마나 쪼개서 다닐지가 관건일 테니까. 본격적인 시작은 가을에 하더라도 대략 올해 안에는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작은 녹음기를 챙겨 가서 입으로는 글을 쓰며 걸어 볼 생각이다. 매번 핸드폰을 꺼내서 메모를 할 수도, 그렇다고 해서 노트북을 들고 가서 쓰기에는 더 어려울 테니까. 가뜩이나 발도 무거울 텐데. Shadows on the trek, 블로그에 글 폴더도 벌써 만들어 뒀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렇다고 해서 이걸로 책을 쓸 건 아니다. 굳이 나까지. 


생각을 불러온다는 점만 보더라도 걷기랑 독서는 참 많이도 닮아 있다. 건강한 삶은 덤이고. 그렇게 걷다 보면 평소에 보지 못하던 풍경들을 보게 될 테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지. 중년을 향해 간다는 게 이런 건가? 어쩐지 올봄부터는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더라. 딸 둘이 커가는 속도만큼이나 도전과의 거리도 갈수록 멀어져만 가니까. 


아직은 할 수 있는 일의 유혹에 쉬이 빠져서는 안 된다. 살수록 선택지는 자연스레 줄어들 게 마련인지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언젠가는 할 수 있는 것만 하며 살아야 할 테니까. 아니,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퇴근길 3.7km를 가끔 걸어볼 생각이다. 그럴싸한 계획만이 그럴듯한 결과를 낳을 거라 믿으며, 아무쪼록 아직은.


지금 이런 고민도 부디 그 길 위에다 살포시 내려놓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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