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읽으면서 자꾸만 숫자를 적게 만드는 그런 책이 있다. 이를테면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처럼. 물론 처음부터 숫자를 센 건 아니었다. 읽다 보니 문득 대체 몇 살 때 쓴 글인지 질투가 동했기 때문이다. 세어보지나 말걸. 생년을 대조하다 보니 무려 스물넷부터 나보다도 어린 삼십 대 후반에 쓴 게 전부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렇다. 처음엔 그저 친구와 주고받는 편지인 줄 알고 무심하게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주기를 세어가며 편지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초반에는 1971년 5월 한 달에만 열 통씩 보내던 편지가 무려 한 달 반 동안 깜깜무소식이었고, 그러다 다시 날아든 편지에는 역시나 로테라는 여자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라. 텍스트로만 15페이지에 걸쳐서 나온다는 건 비밀이다.
나중에 가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베르테르보다 더 슬픈 건 알베르트였을지도 모른다고. 언제나 기품을 유지하려 애쓰던 그라 해서 어찌 늘 평온하기만 했으랴? 시작은 베르테르처럼 하더라도 알베트르처럼 끝을 맺는 우리네 사랑. 그 누구도 미래는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제 마음을 그냥 맘 가는 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시절 알베르트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얼마만큼 썼을지 비록 알 길은 없지만, 부디 그런 작은 위안이라도 있었기를 바란다. 지키고 억누를 게 너무나도 많은 알베르트가 어쩐지 나는 더 슬픈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비록 이루지는 못했을지언정 한없이 뜨거워 본 사람이었으니까. 알베르트처럼 시작부터 지키려고만 하는 건 너무 슬프잖아.
읽는 동안 이승환의 기다림이라는 곡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오늘날 북방계 소녀를 만든 원흉이라도 해도 무방할 만큼 문제적 노래 중에 하나다. 그 시절 세이클럽 채팅만으로도 누군가에 빠져들 만큼, 한없이 찌질했던 내가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 해서 전혀 모르지는 않았던 것도 다 음악 덕분이었다. 듣는 동안만큼은 나도 언제나 그들처럼 기다리며 그들만큼 아파했으니까.
베르테르를 빙자한 괴테에게 알베르트란 어쩌면 그가 그토록 되고자 했던 또 다른 자신이었고, 빌헬름이란 존재는 로테를 만나기 전 평온했던 자신이었을지도 모르지. 베르테르로 시작해서 알베르트처럼 끝을 맺는 사랑의 온도. 누구에게는 한없이 뜨거운 것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서글프리만큼 차가운 것이었으니까. 그 슬픔의 온도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