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사전적 의미는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이며,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을 예로 든다. 반면에 지식백과 상에서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작품의 구성, 창작과 감상뿐만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역사적 문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한 학문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문학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가뜩이나 아직은 서평이 낯선 와중에 어떻게든 써야 하는 나로서는 먼저 자신을 납득시킬만한 답을 얻어내는 게 순서겠지만, 막상 그 답을 찾아 헤매고 있노라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려오는 건 왜일까?
나는 단지 아름다워서 좋았을 뿐인데. 문예로만 받아들일 땐 그리도 즐겁던 문학이, 다만 쓰자고 보니 어느새 이렇게. 급기야 우리가 여태 알아 온 문학이 이제는 너무 뻔하다고 말하고픈 충동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전히 클래식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까지도 답습만 고집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심 뻔한 건 싫지만 뻔뻔하긴 두려웠던 분들께 감히 고합니다. 혹시 박수를 치시려거든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갈릭은 좋지만 마늘은 싫어. 시나몬은 좋지만 계피는 좀 싫어해도 되는 거 아닌가?
1990년에 발매된 공일오비 1집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 객원 보컬로 데뷔한 윤종신은 34년 차 베테랑 가수다. 긴 시간 자기 이야기를 노래해 온 사람. 방송인으로서는 언뜻 수다스러운 면도 있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사람. 학창 시절 내내 이어폰을 꽂고 살았던 내게는 이소라, 유희열, 신해철과 같은 라디오 스타가 많았다. 물론 동명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아직도 옛 영광을 잊지 못하며 살아가는 캐릭터를 뜻하는 건 아니다. 갈수록 감정이 식어가는 내게 그나마 채 마르지 않고 남아있는 감수성이 있다면 그건 순전히 그들 덕분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 북방계 소녀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 노래들은 지금도 여전히 내 음악 재생목록에 남아 ‘나를 안아주는 플레이리스트’ 중 한 부분을 버젓이 차지하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거부하기 힘든 윤종신의 산문집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 오랜 시간 그의 가사를 동경해 온 나로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가을이 지척에 와있다는 걸 먼저 귀띔해 주는 건 언제나처럼 음악이었다. 음악이 먼저였다. 계절은 늘 그렇게 불현듯 내 귓가에만 울리는 음을 타고 반 발짝쯤 뒤에서 슬그머니 따라오곤 했으니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딱 좋을 그만큼만. 무려 2004년에 〈이별택시〉라는 노래에서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라며 발라드 가사의 전형을 보란 듯이 무너뜨린 그가 쓴 산문이라면 말이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예술이었고, 본디 가사란 그렇게 글로, 무릇 노래란 이야기로만 만들어지는 거니까. 이 책은 오랜 시간 성실히 글을 써 내려온 작사가 윤종신의 성장기가 주를 이룬다. 어언 34년을 노래해 온 그가, 가사라는 한정된 음률 위에 다 싣지는 못한 행간의 의미와 쓰던 당시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이제서야 비로소 친절히 밝힌다.
자꾸 남을 밟고 위로 올라가려다 보니까 우리는 자꾸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만들게 되는 거예요.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원래 노래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만드는 건데 말이죠.
- 세로(2017년 월간 윤종신 1월 호/48세 윤종신) 217p
하지만 계속 그렇게 유혹에 굴복하다 보면,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만 반복하다 보면,
자기 것은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말 겁니다. 남의 취향을 따라가는 건 결국 나를 지우는 거니까요.
- 추위(2017년 월간 윤종신 12월 호/48세 윤종신) 234p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염탐 욕구를 절로 부르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꾸준히 남기는 게 우선일 테니 지금처럼 부지런히 살아가겠지만 설령 혼잣말이 되더라도 상관은 없다. 왜냐하면 그건 세상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일 테니. 중요한 건 형식만이 아닐 거다. 글이란 쓰는 이가 규정짓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어떻게 불리느냐의 문제일 테니까. 그렇다면 문학이란 당최 어떠해야 하며, 당신에겐 어떤 게 문학일까?
사랑 이야기는 응당 어떠해야 한다는 서사적 경계에 갇히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익숙한 것으로부터 자꾸 달아나려는 시도가 선행되어야 아이디어는 찾아와 줄 테니까요.
- 몬스터(05년 10집/36세 윤종신) 82p
예술에서 어떠해야 할 당최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뻔한 선입견에 상응하는 글이 현재는 결코 문학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서라도. 그보다 내가 듣고 싶은 건 각기 다른 노래로 이루어진 각자의 인생 사운드트랙이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저마다의 노래가 어쩐지 내게는 훨씬 더 문학적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시나몬은 좋아하지만 계피는 싫어하는 지독한 삐딱이여서 그럴 테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나는 개중에서도 그런 것만 고르고 골라서 좋아하니까.
좋은 가사란 구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이야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가사.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한 가사.
- 거리에서(2006년 성시경 5집/37세 윤종신) 69p
누군가 자기 마음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주기를 바랐던 거죠.
답은 이미 자기 안에 있었던 거예요.
- 이별톡(2018년 월간 윤종신 3월 호/49세 윤종신) 43p
나는 사람을 가리듯 가사도 좀 가린다. 덕분에 갈수록 참고 듣기 힘든 노래만 더 늘어간다. 그렇다 보니 급기야 재즈를 더 많이 듣게 되어버린, 웃픈 상황에 처한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결국 가사란 이런 거다.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어떤 날, 차마 내 입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누군가 대신 전해주기를 간절히도 바랐던 그날, 때마침 나 대신 내 이야기를 노래해 준 고마운 글이어야 비로소 한 편의 노래가 되는 거다. 그 밤, 한없이 찌질했던 나를 안아주는 노래. 저마다 인생 BGM이란 그렇게 탄생되는 거니까.
문학은 어디에나 있다, 장면이 곧 문학이니까. 그렇다.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장면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그건 문학이다. 활자와 인간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서, 출판의 침체기라 일컫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여기에 존재한다. 나만 알고 있기에는 차마 죄스럽기까지 한 그 장면을 성실히 기록하고 정성스레 표현해 낸다면 그걸 아니라 부정하긴 힘들테니까.
저는 가수가 된 다음에야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길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내 꿈은 이거야, 하고 선택한 거죠.
- 나의 이십 대(1996년 6집/27세 윤종신) 155p
나 또한 알지 못했다. 책을 한 권 출간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의 꿈을 꾸게 될 줄은. 아무쪼록 그조차도 몰랐을,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그의 문학적 행보가 길게 이어져서 오래 훔쳐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나 또한 지금처럼 꾸준히 글을 쓰고, 언젠가는 더 잘 쓸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할 테니 말이다. 성실한 창작자의 삶과 시선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밀어내기가 더 어려울 거라 믿는다. 그들이 남긴 모든 말과 글이 내게는 문학 그 자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