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가 개봉하던 2016년, 건대에 살던 나는 가끔 집 앞 롯데시네마 아르떼관을 찾곤 했다. 요즘은 고급화 전략으로 가격도 좀 비싸진 모양인데, 당시만 해도 개봉관을 많이는 얻지 못하는 비주류 영화를 다루는 그저 조그마한 상영관이었다. 하필이면 나는 그런 걸 그냥은 지나치지 못하는 마이너한 취향의 소유자일 뿐이고. 큰 사건 하나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상업영화는 당장 챙겨보지 않더라도 살면서 한 번은 마주치기 마련이다. 명절에 TV를 통해서든, 장거리 비행 중 기내에서든. 그 시절 괜히 영화가 생각날 때면 먼저 아르떼관 상영작부터 찾고, 그중에서도 포스터 느낌만으로 골라보곤 했다. 괜히 쿨해 보이고 싶어서였던 건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럴 소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목적 없이 여행을 가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지만, 영화 한 편 보는 것쯤이야 언제든 손쉽게 가능한 일이니까.
최근에는 기본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스포나 당하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일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까 어두운 극장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건 언제나 묘한 설렘을 안겨준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전성기를 내달리던 덩치 큰 코미디언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그렇게 강제로 얻게 된 휴가 덕분에 마침내 자신의 번아웃을 인지하게 되면서, 급기야 산티아고 순례길 791km에 오르는 이야기. 웃기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갑자기 먼 고행길을 떠났으니, 당연히 우여곡절만 줄곧 이어지다가 끝내는 깨달음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는 그런 이야기. 어떻게 보면 되게 뻔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 나는 그게 무척 좋았나 보다. 그 뒤로는 며칠씩이나 산티아고를 검색해 가며 책이랑 굿즈까지 여럿 사들인 걸 보더라도 말이다. 아마도 마냥 남 일 같지가 않아서였을 테지.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뜻 모를 불안에 시달리던 서글픈 시절이었으니.
호기롭게 서울 진출을 선언한 뒤 필요한 운까지 몰아친 덕분에 정작 나를 돌볼 겨를도 없이 죽어라 일만 하던 그 시절. 이걸 쓰면서도 대체 몇 살이었는지를 따져보니 참으로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어째서 그토록 용감할 수 있었던 걸까. 서른셋에 서울 상경을 한 뒤로는 연일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의 연속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어림잡아서라도 해내야 했으며, 그다음은 그저 열심히 해 볼 따름이었다. 실은 퇴로도 끊어내다시피 모두가 말리는 도전을 감행했던 터라, 달리 방법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발칙하게도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거니와 만에 하나 그랬더라면 아마 업종 자체를 바꿨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확신한다. 그렇지만 일이 된다고 해서, 돈이 벌린다 해서 마냥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서글픈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된 것도 아마 그 무렵이리라. 서른다섯이었다.
그즈음 본격적으로 산티아고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꿈조차 막연히 꿀 수 있는 타입은 아닌지라, 굳이 아식스 강남 직영점에 찾아가서 발 측정까지 했다. 그렇게 푹신한 거 하나랑 단단한 것까지 두 켤레나 사서 나왔다. 맥시멀리스트 어디 안 가고, 진짜 어딜 가게 된다면 한 켤레만으로는 부족하니까. 그걸 신고 도쿄에 시장조사 가서 엄청 큰 배낭에다 샘플 꽉꽉 채워가며, 연습 삼아 종일 걸어 다니곤 했다. 생각보다 해볼 만하겠다는 판단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며칠을 비워야 되는지 계산도 해볼 수 있었다. "봄: 4/15~5월 말이 가장 좋음, 봄꽃이 피는 순례길. 가을: 8/20~11월 초까지, 걷는 도중 비를 만날 가능성이 적음."당시 실제로 메모해 두었던 내용이다. 나는 뭘 하든 이렇게 메일에 남겨두는 편이라 원한다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가끔 지금처럼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있노라면 마치 예전의 뇌구조를 관찰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참으로 단순하고 쉬이 변하지도 않는 오, 하찮은 인간이여.
결국 가지는 못했다. 아니, 안 간 건가. 아무튼 당시 아내도 내가 버거워 보였던 건지 의외로 허락까지 쉽게 받아냈었는데. 생애 단 한 번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가정한다면, 어쩌면 그때 안 가길 잘한 걸지도 모르겠다. 당시 모자란 나로서도 그 길 위에 고단한 내 모습을 여러 번 상상해 봤었는데, 깨달음을 얻어야 할 결정적인 그 순간에 혹시 내가 욕만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부터 먼저 들었으니 말이다. 최근에 시장조사를 가보니 체력부터가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더라. 순례길을 걷는다는 건 물론 길 위를 걸어가는 그 마음도 중요하겠지만, 엄연히 체력부터 뒷받침이 돼줘야 하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질 않았었고, 지금의 나는 마음만큼은 얼추 준비가 된 것 같은데 슬프게도 엄두가 안 난다. 이제는 거길 다녀오면 글도 막 술술 나올 것 같고 그런데. 하하.
이제는 꼭 산티아고일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나는 예나 지금이나 종교를 믿을만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 시절 나는 고작 그것 외에는 아는 게 없었던 탓에, 막연한 해방구를 꿈꿨던 것 같다. 와중에 때마침 눈에 들어온 게 산티아고였을 뿐이고, 이제는 아무래도 괜찮다. 지금 내 곁엔 책티아고도 있고, 글티아고도 있으니까. 내가 원한다면 언제고 찾을 수 있는 것들이라 더욱 뜻깊고 소중한 것들. 순례길처럼 특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나는 활자 위에서 재미지게 놀 수 있고, 몰입하며 생각을 거니는 동안 나는 행복하니까. 여행은 행복이 아닌 쾌락에 가깝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사람이 어쩌다 가끔 주어지는 유희만을 바라보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게 있어서도 막상 여행을 하는 그 시간보다는 오히려 떠나기 전 그곳을 상상하며 준비하는 순간들이 더욱 즐겁다. 장담컨대 지금 간다면 아마 하루는 걷고, 하루는 쓸 것 같다. 나란 놈은 필시 쓴다는 핑계로 자꾸만 더 쓰려고, 쓴다면서 실은 쉬려고 들겠지. 하하. 다만 산티아고를 떠올리며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여태 받고 누린 게 너무 많은 탓에 되려 이제는 두렵기까지 하다. 그 길을 밟고 있는 내가 어떤 기분일는지는 정작 가보기 전까진 알 수 없으니까.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 없는 고마운 나의 산티아고. 이제는 어쩐지 콜라 같기도 해서 차마 나라는 멘토스를 넣어보기가 두려운 나의 산티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