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Part 2
이 가을 Part 1
요즘 우린 마치 미리부터 넘겨짚기를 벼르던 사람들 같다. 정작 나는 그럴 수만 있다면 차라리 시간을 잠시 멈춰두고, 그사이 장문의 글이라도 써서 보여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어쩌면 이러한 생각부터가 그 모든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환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누구를 온전히 이해시킬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알면서.
내가 그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못돼서가 아니다. 다만 그럴 기회가 없는 까닭이다. 그때도 몰랐을 테지만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할, 그를 사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듣지 않을 이야기라면 고이 접어두는 게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렸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 본들, 앞으로도 여전히 모를 예정인 그를 이해시킬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나도 그가 되지 못하고, 그도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유독 그런 일들만 쉬이 잊히질 않고 오랜 흉처럼 내 가슴에 남는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우린 단지 서로를 향해 걸어왔을 뿐, 네가 걸어온 그 길 끝엔 언제나 내가 서 있었으니까.
상반기엔 실로 나답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누가 그리 하라고 떠민 것도 아니었으니 순전히 내 의지대로였다. 어쩌면 요즘 우리는 바쁠 줄만 알았지, 정녕 혼자일 줄은 모르는 듯하다. 독립된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아무리 자부해 봐도 그건 사실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바쁠 땐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되어서야 이윽고 찾아오는 자유의 무게란 실로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오롯이 엉덩이로만 버텨내는 이 시간이 나는 왜 이리도 좋은 걸까? 실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잠시 서로를 멀리하던 그 시절 처음으로 나를 경험한 덕분이니까. 달라진 건 내가 아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를 지금껏 자신조차 알아봐 주지 못했던 거다. 누구를 탓하랴. 그 모든 게 나였는데.
마음이 동하는 데 진심을 다하려면 그만한 에너지를 비축해 둬야만 한다. 나처럼 유달리 집을 사랑하는 경우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고백하건대 노력이야 언제든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자그마한 성과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상실감만 더해가는 나라서. 내가 나가기를 꺼리는 이유도 실은 이 때문이다. 허송세월이라면 일찍이 좀 해본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열정이 넘쳐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잠깐인 걸 알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왜 또 안 오냐는 질문은 이제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나야말로 왜 그렇게 나가야만 하는 건지 늘 의문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묻지 않았던 건 비록 걱정스럽긴 하지만 이제는 노는 게 제일 좋은 삶 또한 존중하기 때문이다. 거길 다녀오면 나는 또 며칠은 칩거하려고 들 게 뻔해서.
언젠가는 나도 가마솥처럼 뭉근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데, 지금은 불 쇼도 마다하지 않는 중식당 웍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아무래도 나는 남들보다 에너지 레벨이 한참은 낮은 것 같다. 늘 열의에 차 있던 나였지만 그건 단지 좋아하는 일에 한해서였을 뿐이다. 한 편으로는 달력을 확인해 가며 한없이 기운을 비축하려 드는 나니까. 내가 공간에 진심인 이유도 나만의 비축기지가 필요해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창을 열고 슬며시 눈 감고 귀 기울이면 여지없이 느껴지는 가을. 가을은 윽박지르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서 더 좋다. 늘 이렇게 슬그머니 몰래 살짝씩만 다가오니까. 계절이라 해서 꼭 밖을 나가야지만 반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나는 결국 다시 돌아왔다. 내가 편안한 제자리로. 답지 않은 시간을 열심히 보내 봤지만, 그건 나 같지가 않더라.
창문만 활짝 열어도 충분한 가을, 여유가 된다면 비행기를 타고 내내 쫓아다니고만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