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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방계 소녀 Sep 05. 2024

원하는 만큼만

글로망디 상륙작전


책은 언제나 원하는 만큼만 내게로 와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계절에 꼭 들어맞듯이 누군가 뒤에서 큐레이션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요즘 내 기분이 그렇다. 왜 이제서야 읽은 건지 한탄하게 만드는 책이 너무나도 많지만, 오히려 다행이야. 채 수용하지 못할 때 읽었더라면 과연 지금처럼 좋았을지 쉬이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연이란 그렇게 늘 오가기를 반복하지만, 그 모든 관계의 끈을 부여잡으려 갖은 애를 다 쓰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이 또한 내가 원하며 살아내는 그만큼만 와줄 테니까.


어쩌면 호밀밭의 파수꾼 그 자체인 저자 J. D. 샐린저. 작년에 산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된 것도 아마 운명일지 모르겠다. 주제에 나도 언젠가는 소설을 써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이 향하는 곳, 그 끝에 서 있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결국에는 온전한 나 하나를 찾으려는 거니까. 그러다 보면 비로소 내가 주인공이 되어 글을 쓸 수 있을 거다. 아니, 쓰지 않기가 오히려 힘들 거다. 형태는 당연히 소설이어야 할 테고. 그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끝내 마주한 진짜 나라는 민낯 앞에서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을는지 참으로 궁금하고도 두려워진다.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오빠가 싫어하는 건 백만 가지도 넘을 거야. 그렇지? 그럼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 봐. 진짜 좋아하는 것.” 225p 홀든이 번째 퇴학을 당했다는 알게 동생 피비의 말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도 진짜 좋아하는 단 하나를 묻는 말에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텅 빈 사람으로 변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누구라도 그 속내를 알아차리지는 않을까, 몇 번이고 제 마음을 꾸깃꾸깃 눌러 접는 걸지도 모르지. 이런 문장을 쓰면서도 문득 가슴이 아려오는 걸 보면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나도 어느새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보다. 고이 접어두었다가도 이내 다시 펼치기를 반복하는 내 마음은 채 펴지지를 않으니, 서글프긴 해도 인생이란 본디 그렇게 덧문 같은 것. 요즘 내 마음이 그렇다.


홀든이 그 추운 겨울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게 하면서까지, 샐린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홀든은 아니 샐린저는 단지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을 거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단 한 사람만 곁에 있더라도 삶은 충만해지는 법이니까. 지금 내게 고마운 그분의 존재처럼 이 사람의 말이라면 기꺼이 따르고 싶게 만드는 이가 홀든 곁에도 있었더라면. 어쩌면 이건 단순히 수긍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오롯이 내가 내린 선택만이 나를 나로서 살게 할 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지킬 줄 아는 파수꾼이 되어야만 하니까.


91년이라는 장수를 누리고도 남긴 작품이 많지 않은 건 아마도, 그가 홀든 콜필드라는 또 다른 자아를 재빨리 찾아낸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그런 걸작 하나를 남긴 것만으로도 당연히 질투가 나지만, 그보다는 탈고 후에 마음이 얼마나 후련했을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샐린저의 2차 세계대전 참전에 비할 수야 있겠냐마는 급기야 우습게도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어떤 글을 쓰게 하려고 이러한 시련들이 자꾸만 닥쳐오는 거냐고. 모르긴 몰라도 영 나쁘진 않을 거다. 나는 매 순간 진심이었으니까. 지금은 비록 나만의 글로망디에 있는지라 이렇게도 불온한 마음이 마구 널뛰고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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