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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방계 소녀 Nov 21. 2024

겨울을 부르는 소리

Jazz is muted voice.


음악만큼 사람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게 또 있을까? 위대한 작가들의 첫 문장이 그러하듯 음악도 첫 음 하나면 가히 충분하다. 이를테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그 서늘한 소리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남자의 처량한 뒷모습과 같아서, 차라리 누구라도 당장 그를 좀 앉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질 정도이니 말이다. 그의 입술이 차가운 트럼펫에 닿는 순간 계절은 어느새 겨울에 가닿는다. 나는 그보다 쓸쓸한 소리를 알지 못한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챙겨가려는 공연이 있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황송해지는 김동률과 이소라. 그마저도 콘서트를 할 때마다 꼭 두 번씩은 가보려고 애를 쓴다. 귀가 너무 납작해서 슬픈 나는 두 번째 공연을 들어가서야 마침내 눈을 뜨고 무대를 바라보는 까닭이다. 첫 공연에서는 차분히 눈을 감은 채, 양손 검지로는 무대를 향해 그저 귀만 살짝 기울일 뿐이다. 아무리 시끄러운 와중에도 잠자코 가만히 듣게만 되는 그런 이야기처럼, 그들의 발라드는 애달픈 낭송이다. 그런 쓸쓸함이 나는 반갑기만 하다. 


그런가 하면 하물며 내가 듣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음악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이와무라 류타의 Reading to hear 같은 앨범이 그러하다. 물론 새하얀 여백 위에 담긴 일러스트 표지가 너무 귀엽기도 하지만, 읽기와 듣기가 상호 공존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하다. 덕분에 나는 곡이 언제 끝났는지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채 더 많이 읽을 수 있었다. 듣고도 싶고 읽고도 싶지만 아직 마땅한 대안을 못 찾은 분들께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한여름엔 의식적으로라도 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처럼 서늘한 음악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애써 대낮의 뜨거운 태양을 서쪽으로 밀어내고 싶은 마음 절실해지니까. 앨범 자켓을 찾아보면 누구라도 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을 테고, 쉬이 잊히지도 않아서 들을 때마다 분명 이 글도 떠올리게 될 거다. 여름은 자고로 겨울 음반으로 나야 제맛이다. 제때 듣는 음악도 물론 좋지만, 역시즌에 듣는 음악이 주는 낭만 또한 치명적인 법이니까. 


덕분에 실로 오래간만에 가사가 담긴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더구나 10월 중순부터는 주 2회 연재에 쫓기던 터라,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이 찾아와도 정작 들을 수가 없더라. 스치는 음악 하나에도 자칫 감정을 빼앗기기 쉬운 계절이 하필이면 가을이라, 그럴 땐 잔잔한 BGM마저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18화 난 나를 지켜가겠어♫를 쓰기 전에는 필요에 의해서라도 며칠씩은 신해철을 보고 들으며, 애써 감정을 되살려야만 했는데 그 과정이 되레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가 여전히 사랑해 마지않는 술이나 담배처럼 역시나 잘 쓰기만 하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게 음악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진짜 겨울이 오면 현악이 들어가서 한결 따스해지는 음악을 찾는 편이다. 재즈는 소리 없이 읊조리는 시다. 특히나 Chris Connor Sings Lullabys Of Birdland나 Clifford brown with strings LP는 혹시나 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좋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도 사도 또 사고 싶은 심정이다. 겨울을 제대로 만끽하는 방법도 역시나 음악만 한 게 없다. 적어도 듣는 동안만큼 우리는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으니까. 괜스레 음악이 더 좋아지는 바야흐로 음악의 계절, 드디어 겨울이다. 


시릴수록 음악은 더 가슴으로 와닿는 걸까? 아니면 단지 내 취향이 겨울 음악인 걸까?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겨울엔 유독 더 듣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굳이 찾지 않아도 절로 들려오는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앨범 같은 건 물론 논외로 해야겠지만, 옷깃을 여미는 것 이상으로 우리 마음을 데워주는 음악은 무궁무진하니까. 애플 겨울 광고에 삽입되어 큰 사랑을 받았던 Stevie wonder와 Andra day가 함께 부르는 Someday at Christmas, 빈 소년 합창단의 The Christmas Album, 김동률의 겨울 앨범 YULE, 이소라의 Rendez-Vous나 그냥 이렇게도 물론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원하면 언제고 기꺼이 나를 껴안아 주는 존재가 음악 말고 또 있을까? 생을 다 바친다 해도 인간의 두뇌에 새겨지는 음악은 불과 천 곡 남짓이라는데, 내가 아무리 늙고 병든다 해도 김동률을 어떻게 잊고, 이소라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언제 들어도 변함없이 이렇게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마는데. 아무래도 12월엔 잠시 글은 좀 내려놓고, 음악과 함께 한 해를 좀 되돌아봐야겠다. 차마 지금처럼이라고 쓰지는 못하겠지만, 언제까지나 아이처럼 읽고 들으며 살아가고 싶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어른의 현실은 녹록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Miles davis means Jazz.

Iwamura Ryuta - Reading to Hear

Duke Jordan - Flight to Denmark

김동률 - KimdongrYULE

그리고 My one and only love, 이소라


북방계 겨울 PLAYLIST

https://open.spotify.com/playlist/5NMkjseNKUnxPFIQ8QW2uL?si=4AQrcfNBTw-P8PxLFWol0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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