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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방계 소녀 Nov 26. 2024

꿈속의 문장가

고독한 항해


목표 지향형 인간의 슬픔이랄까? 출장을 앞두고 29화까지 예약 발행을 미리 하느라 글보다는 애를 더 많이 썼던 탓인지, 막상 다녀오고 나서는 겨우 에필로그 하나 쓰는 게 왜 이리도 귀찮게 느껴지던지. 꾸준함을 유지한다는 건 역시나 어려운 일이고, 그날의 나는 결국 내가 아니었나 보다. 이런 생각조차도 읽지 않았다면 결코 가닿지 못했을 거라 나는 그저 책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는 스스로를 다각도로 비춰가며 의심하게 되었으니까. 여느 일이 그러하듯 채 애쓴 만큼도 얻어내기가 어렵지만, 독서만은 그렇지가 않다. 


어느덧 30화라니, 이제는 진정 끝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실은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제작된 콘텐츠였고, 30화 연재까지가 계약 조건이었으니까. 처음으로 글을 등록한 6월 말을 기점으로 순수 소요 기간만 5개월, 그 안에는 내가 유독 취약한 한여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누리고 살면 더욱 풍요롭겠지만, 모르고 산다 해도 속은 편안한 게 예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었다. 어쩌면 별게 다 중요한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험난한 길이니까. 


실은 이번 연재를 통해 처음으로 퇴고에 대해 깊게 고심해 볼 수 있었다. 그러한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이 바로 17화. 물론 이건 비밀이지만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당시에도 손보던 글이 더 있기는 했지만, 쓰기와 짓기 사이를 헤매느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던 나머지, 차라리 현 상황을 고스란히 기록하는 편이 유의미하겠다는 판단이 들더라. 분량은 턱없이 모자란 걸 알았지만, 글을 고치려다 애꿎은 나를 고치는 상황만은 피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아주 죽으란 법은 없다는 듯이 때마침 반가운 가을은 찾아와 주었고, 엉켜있던 실마리도 조금씩은 풀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신해철 10주기 덕분에 형을 다시 만나, 나를 지켜가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굳힐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세상살이에 닳아 부드러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과 세상에 물들어 추잡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의 차이를 계속 겪으며 공부해 보려 한다.” 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 95p. 때마침 발견한 문장 덕분에 더는 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렇게나 의심이 많아진 것도 결국에는 다 내 탓이더라. 한쪽 창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울 수 있겠지마는, 내 마음에 이는 폭풍을 내가 안 이상 모른 척하기에는 차마 면이 서질 않기 때문이다. 사전에서 윤문을 찾으려거든 윤색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여정도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알베르 카뮈가 선택한 최선의 반항도 정작 자신은 부단히도 애를 쓰며 살아가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꾸준한 연재가 남긴 유산이랄까? 이제는 꿈속에서도 버릇처럼 쓴다. 그런 꿈을 꾸다 보면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그 안에서 메모하는 꿈을 또 꾼다. 다음 날 아침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면서도, 이번만은 붙잡아야 된다며 문단 전체를 몇 번이고 되뇐다. 그러다 이내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앞뒤 문장 연결이 그렇게 매끄러울 수가 없다. 꿈의 문장가가 되길 바랐으나, 꿈속의 문장가가 되어 또다시 잠이 든다. 


7월부터 9월까지는 주 1화, 10월부터는 2화를 연재해 왔지만, 오히려 10월부터는 잡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기에 한 주에 하나만 쓰던 그 여름이 마음만은 더 힘들더라. 예약 발행을 두세 개씩 걸기 시작한 것도 정작 가을부터였으니. 12년 간의 이야기를 차력처럼 몰아 쓰던 2년 전에도 꼭 지금처럼 여름으로 시작해서 겨울에 끝이 났었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일을 좀 더 열심히 해봐야 될 것 같은데, 나는 어쩌다 가늠하기도 힘든 무용한 아름다움에 빠져 이리도 허우적대고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거듭 마음만은 유용할 바에야 예술을 뭣 하러, 무용한 아름다움이 곧 예술인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순전히 효율만을 바라보며 여지껏 살아왔기에 이 또한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심 쓸모 있길 바라는 가난한 마음을 감추기보다는 그저 무용하기만 한 게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부지런한 예술이 좋다. 아니, 실은 그럴수록 더 성실해야 된다고 믿는다. 늘상 부지런히 움직이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게 우리네 삶이니까. 


양산을 위한 생산은 예술을 낳지 못한다. 더구나 이렇다 할 불행조차 없는 나 같은 인간이 그럼에도 계속 쓰고자 한다면, 열심밖엔 방법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노력만은 여전히 신뢰하고 있으니, 애쓰는 법을 잊지 않는 한 가능하리라 믿어 보련다.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별걸 다 궁금해하는 나 같은 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분명 어딘가엔 존재할 테니. 


작가의 세계란 어쩌면 하나의 결을 따라 평생을 흘러가는 강이 아닐까?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실체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항해. 지금은 바야흐로 정체성의 시대라고들 하니까. 배우가 차근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가듯 도리없이 읽고 살겠지만, 쓰는 것만은 되도록 참지 못할 때에만 마지못해 허락하고자 한다. 오늘 내가 써내려 가는 글은 내일 쓰려는 글의 서문 격이자, 이를테면 단 한 명을 위한, 2집을 위한 1집이어야 한다. 어디든 평생을 그렇게 할애할 수 있다면 정체성도 분명 짙어지고 말 테니까. 


Writing to hear my voice.

이상 뉴플랫폼 기반 콘텐츠 및 작가 발굴을 위한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의 「2024년 뉴플랫폼 퍼블리싱 지원사업」선정작, 북방계 소녀의 두둥 등장이었습니다. 


이제는 12월 결산만을 남겨두었으니 사실상 한 해가 끝나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한이 있는 시간은 어쩜 이렇게 잘도 흘러가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무쪼록 내년엔 더 행복하시기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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