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을 꿰매어 만든 기록
어느 날, 골지로 된 7~8부의 롱 니트를 만들게 되었다. 아주 시원한 코발트블루색이다. 아주 많이 많이 좋아하는 색이다. 이런 색을 보면 왠지 기분이 업되며, 에너지가 급상승되는 느낌이다. 마치, 다디단 비타민 음료를 들이켠듯한 기분 좋음. 동대문 시장에 갔다가 색에 반해 앞 뒤 생각 없이 덥석 사가지고 왔다. 마음이 두근두근, 디자인은 휘뚜루마뚜루, 두리뭉실 만들었다. 너무 밋밋한가 싶어, 반짝거리는 단추 하나를 포인트로 달았다. 반짝반짝 여러 개 달까 하다가... 과유불급!
원단이 두꺼워 박음질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보통의 경우는 박음질을 해서 모양이 잘 잡히게 다림질했다면, 이번 거는, 겹치는 부분을 미리 다림질로 꾹꾹 눌러서 조금이라도 부피를 줄여 납작하게 해 놓아야 겨우 재봉틀 바늘이 통과됐다. 게다가, 이젠 좀 잘한다 방심했는지 앞부분의 시접을 삐뚤 하게 오버룩해 버렸다. 깎여나가는 시접을 보며 아차! 싶었다.
요즘 같은 때, 아침저녁으로 입던 옷 위에 잠깐 껴입고, 출, 퇴근길 남편을 픽업해 주는 용도로 잘 입고 있다. 선이 좀 삐뚤빼뚤하지만, 괜찮다.
갱년기와 사춘기 아들의 내적 갈등 심화되던 때, 우연히 배운 재봉틀! 배움은 짧고, 코로나는 길었다. 그럼에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 코로나 시대를 재봉틀과 함께 잘 견딜 수 있었다. 직선박기로 겨우 소창행주 만드는 수준을 넘어, 나만의 취향을 담은 옷을 만들기까지 매일 박고, 뜯고, 노력하며,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처음, 삐뚤빼뚤 못생긴 바느질로 이것저것 만들어서, 여기저기 선물했던 우매 했지만 용감했던 기억들. 받아 든 이들의 입가에 퍼지던 미소들, 성장하는 기쁨, 동대문 가서 재료를 물감 고르듯 설레며 사던 일. 덕분에 보물 같은 동대문 종합 시장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화사하고 다양한 무늬의 원단,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부자재,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활력, 그리고, 강원도를 비롯 각 지방에서 예쁜 원단 사러 오는 이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듣고 구경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사춘기 아들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하는 날은 어김없이, 소액의 현금을 챙겨 들고, 이곳으로 달려가 쇼핑하며 위로받았던 기억이 많다. 삐뚤어진 바느질 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고 뿌듯한 마음. 나만의 취향과 패턴을 알아가며 만드는 온전한 나의 옷과 소품들. 남편과 아이들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바느질하던 조용한 평온의 시간.
아직도 생각나는 어릴 적 방 한 구석을 당당히 차지했던, 책상 같던 나무색 브라더 미싱, 그것을 엄마가 열쇠로 열어 위로 올리는 날, 우리들의 자잘한 무언가를 만들어 주던 유년의 기억이 있다.
재봉틀을 배우고, 한참 재미 들어 왜 이렇게 좋은 걸 안 가르쳐줬나 하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그저 그걸 배울 시간도 없었고, 굳이 배우려고도 안 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아가씨적엔 열심히 사 입는 일에 열중이었던 거 같다. 기억은 참 이기적인 것 같다.
비록, 처음엔 실도 제대로 못 꿰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많은 실수와 노력과 시간이 쌓여 오늘 이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매일 조금씩 꾸준히 노력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 나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또박또박 내딛는 발자국들이 훗날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다.
이번 연재를 통해,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하며 느끼는 기쁨이 얼마나 큰 지. 시간이 지나면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이 된다를 배우며, 바느질처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일상을 이어가야겠다.
덧) 마지막 연재를 마치며, 저만의 길을 가며, 삶의 작은 조각들을 이어나가는 여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재봉틀 ON, 마음평 ON의 연재를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