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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터러시 :: 디지털 이민자가 살아가는 법

엄마가 변화하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육아

by 에메르트리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지 않으면 디지털 세상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한국이 아닌 다른 제3의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지리, 사람을 모르고서는 잘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살아온 방식을 고집해서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점점 우리의 삶 속 깊숙이 들어오는 디지털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세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 이해 방식을 '디지털 리터러시'라고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종종 '디지털 문해력'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자칫 '문해력'이라는 단어에 매몰되면 그 의미를 오해할 수도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디지털 문해력'은 같은 개념을 가리키지만, 왠지 모르게 '문해력'이라고 하면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한정 지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디지털 환경에서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상 훨씬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확장시켜 생각해야 한다. 한마디로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는 태도라 하면 될까.




결국 '디지털 리터러시'란 디지털 환경에서 필요한 이해력 그리고 활용하는 능력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제 디지털 세상을 벗어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길을 잘 찾아가야 한다. 온라인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다니면서, 똑똑하게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세상으로 이민 와서 사는 이민자이다. 낯선 문화와 환경에서 이해되지 않는 일들과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다. 잘 몰라서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나와는 달리, 이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각종 전자 기기가 자연스럽다. 나에게는 큰 산처럼 느껴지는 프로그램들도 몇 번 해보고는 직관적으로 배우고 적용하고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내곤 하는데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하루는 마냥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이도 핸드폰 사진들을 조합하고, 자르고, 이동시키고, 편집해서 스토리가 있는 짧은 만화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주인공은 형아로, 저장되어 있던 일상 사진들로 이리저리 해보면서 만든 것이다. 가르쳐 준 적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 기능들을 알고 했는지 정말 나와는 다른 아이들이구나 싶었다.




얼마 전, 다섯 살 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이 나이의 아이들이 얼마나 다루기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한다. 나 역시, 이론적으로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외식 한 번 제대로 하려면 스마트 기기 없이는 힘들었다. 이 아이도 역시 너무나도 능숙하게 기기들을 다루었는데, 태블릿으로 공부도 하고 핸드폰으로 보고 싶은 유튜브도 척척 찾아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종종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무방비하게 노출될까 봐서이다. 정제되지 않은 영상, 정보 그리고 중독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세상의 온갖 유해한 자극에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다. 신체, 정서, 뇌 발달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만 같다.




이런 지점들에서 부모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 무제한 노출에서부터 완고하게 모든 것을 차단하는 부모까지. 아이들과 함께 기기나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거나 매번 싸우면서 갈등을 일으키거나. 이후 일어나는 일은 일차적으로 부모의 '디지털 리터러시'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나 역시 몰랐을 때는 그저 두렵기만 했다. 여전히 디지털 세상은 어렵고 복잡하다. 그러나 모르고서는 안된다는 걸 직감했다. 엄마로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적어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오는 코딩 프로그램, AI 툴을 직접 사용해 보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나만의 창작품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무조건적인 통제나 허용이 아니라 정돈된 환경 설정을 해주고 싶어서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고.








디지털 기기에 중독된 아이들을 여럿 보았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해가 부족한 부모들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소통하고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부모에게 보이는 계정과 활동 계정이 따로 있는 건 물론이고 그 속에서 온갖 유해한 정보에 노출되며 전자 담배 거래 등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될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인지 나 역시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겁을 많이 낸다. 특히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훨씬 예민하게 굴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통제력이 생겼기 때문에 하나씩 확장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는 제한된 사용을 한다. 초등학생들이 하나같이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디지털 기기 사용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규칙을 정해 생활했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피해 다닐 수만은 없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속도에 맞추어 온라인 세상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디지털 도구들로 이야기를 쓰고 콘텐츠를 만든다. 흔히 많이들 걱정하는 게임이나 영상 시청은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




앞으로 아이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모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핸드폰 하나면 뭐든 만들어낼 수 있고, 전 세계 누구와도 실시간 소통을 하며, 전 세계 시장의 거래가 내 손 안에서 펼쳐지는 걸 본다. 이제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져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이 당연하게 일어나게 될까.






디지털 리터러시를 가져야 하는 이유


그런 점에서 나도 아이들도 반드시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태도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길을 잘 찾는 능력

디지털 세상은 정보의 바다다. 클릭 한 번이면 세상의 모든 지식이 쏟아지지만, 그중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믿을 만한지 구분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부족하면 판단하고 걸러내는 작업을 할 수 없다. 정확하고 믿을 만한 정보인지 확인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헤매지 않을 수 있다. 단순히 정보를 찾는 능력이 아니라 많은 정보 속에서 양질의 정보를 골라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이 능력이 없다면, 정보에 휩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휘둘리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준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데 꼭 필요한 도구일 것이다.




안전하게 다니자

납치, 뺑소니, 무차별 폭행 등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사건사고가 오프라인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못지않게 온라인 세상에도 위험이 있다. 나는 아이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유해 콘텐츠, 사기성 메시지 같은 위험은 생각보다 일상에 가까이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통제하고 감시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고 걸러내는 안전망이 되어줄 것이다.




똑똑하게 이용하는 법

디지털 리터러시는 단순히 기술을 잘 다루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잘만 활용하면 상상하지도 못한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재미로만 사용하는 SNS를 자신의 관심사나 꿈을 알리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친구들이 있다. 정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잘 활용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웬만한 어른보다 훌륭하다 싶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세상을 잘 이해하고 자기만의 세상을 이미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꿈의 멘토와 연결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정말 열린 세상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능력 있는 아이들에게는 나이, 인종, 국적 상관없이 그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걸 본다. 그렇게 나를 온라인 세상과 잘 연결시켜 나의 스토리를 알리는 데 똑똑하게 활용하는 것도 디지털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주는 선물

이런 이유들로 디지털 리터러시를 잘 갖추려 노력하다 보면, 아이들의 미래는 무궁무진하게 열린다.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기회를 발견하고 잡을 수 있다. 어리다고 한계는 없다. 온라인에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도 가능하다.




엄마로서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더 잘 안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던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이와 떨어져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 역시 배움에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인다면, 아이들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이 보이고, 이해하는 만큼 아이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길도 보일 것이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단순히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다. 매일 핸드폰 들여다본다고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아니다. 조금 더 본질적으로 그 세상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세상의 속성과 특징, 그 속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려는 마음이 디지털 리터러시를 가지게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아이들의 나침반이 되기 위해 어렵지만 하나씩 따라가 본다. 기술의 변화를 찾아보고 체험해 본다. 이는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당당하게 우리의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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