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오전에 브런치 글들을 읽다 우연히 내려 본 브런치 추천 작가에 내 프로필이 떠있어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고배를 마시고 작년에 기대 없이 작가 신청을 했다가 덜컥 되어 감사했는데, 자꾸 승진을 시켜
주는 것만 같다. 블로그에 중년백수일기를 오랫동안 써왔지만 완전히 다른 기쁨과 설렘이다.
백수를 작가로 불러 주는 것이 황송해, 나름 진심 어린 글들을 쓰려고 했다. 그날 일기를 올린 후,
계속 다시 읽으면서 더 사실에 가깝게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올봄 시험공부를 하느라 글을 못 쓰고 있는데, 에세이분야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다는 톡을 받았을 때도 오늘 같은 기분이었다. 시험을 중간에 포기하고 의기소침했을 때도 브런치스토리 글쓰기가 큰 위로가 되었다.
요즘 이삼일에 한 번씩 중년백수일기를 올리며 스스로 감동하고 있다. 허무하게 지나쳐 버리는 일상들이
브런치 일기를 통해 멋지고 의미 있는 하루들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부러운 눈길을 보냈던 그곳에서 내 프로필을 발견한 오늘도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처음엔 구독자 많은 분들이 부러웠고 크리에이터분들은 먼 산처럼 보였다. 최근에는 요즘 뜨는 브런치북에
올라온 작가님들이 부러우니, 다음 승진 코스는 그곳이면 좋겠다. 백수가 길어져 없는 눈치를 보고 있지만,
거실에서 글 쓰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내에게도 하나씩 브런치 자랑이 늘어간다. 오늘은 브런치 추천 작가가 되었다고 하니, 브런치 수준을 알겠다며 특유의 시큰둥한 반응이다.
카페에 가면 내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브런치에 들어와 자기 이야기를 읽으며 좋아요를 누르면서 말이다.
글쓰기는 그림과 너무 비슷하다. 막막하고 불안한 시작에서 뭔가 하나씩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고, 디테일이
사실에 가깝게 표현될 때 쾌감을 맛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의 몰입감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공허함이 브런치스토리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메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 하나를 끝까지 해낸 건 없지만, 지금처럼 계속 즐겁게 써 내려갈 수만 있다면 크게 더 바랄 것도 없다.
더 이상 승진을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것만으로도 과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