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와 컴퓨터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오늘은 아내와 롤리폴리꼬또라는 오뚜기 직영 음식점을 다녀왔다.

예전에는 라면과 카레 종류의 퓨전 음식들만 있었는데, 언젠가 1층 마당 옆에 레스토랑이 생겼다.

창업주가 살 던 집을 재건축해서인지 매장 분위기에서 오뚝이 정신이 느껴지는 것 같다.

동상이몽에 나온 창업주 2세와 손녀딸의 모습에서 오뚜기 기업에 신뢰가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뚜기 로고에서 자랑과 허세는 찾아볼 수 없고, 성실과 끈기의 가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시설과 음식이 훌륭해 주택가에서 이렇게 장사해서 남는 게 있을까 하는 오지랖도 들었다.

놀고 있다 보니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점심시간에 들어오는 직장인들 마저 멋있어 보였다.

물론 그들에겐 평일 오전 아내와 브런치를 즐기는 우리가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이런 기업을 하면 취업 걱정 안 해서 얼마나 좋을까라는 푸념을 했다. 당연히 맞장구를

칠 줄 알았는데, 아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단호히 말했다.


허긴 어제 10년 넘은 거실 컴퓨터 하나를 교체하면서도 종일 예민하게 굴었던 내 모습은 사업과는

멀어 보인다. 워낙 변화를 싫어하고 기계치여서 컴퓨터 교체조차도 부담스러워하니 말이다.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할 때 아내의 이런 반응은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마치 대기업 회장보다 당신 팔자가

더 좋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어쩌다 주변 성공한 친구들을 부러워할 때도, 당신 삶이 더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내는 자기 남편 말고는 부러운 사람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돌아오면서 이런 뻔뻔한 말까지 했다. 내 꿈은 행복한 삶이었기에 최대한 행복할

조건들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눈 이물감과 비문증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진 것도, 자격증 공부하다가 포기한 것도, 취업을 못하는 것도, 다 중년의 내 행복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너무 이기적인지 몰라도, 아내에게 고마워할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내가 만약 사업 잘하는 남자였다면 지금보다 덜 행복했을 거라는 정신 승리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