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순이와 옥수수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무료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도 일기를 쓸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아내가 나보고 그런다. 당신 정말 짤순이 같다고.. 너무 짜내는 것 아니냐고..

별 것 아닌 일상들을 잘 엮어서 글을 쓴다고 하는 말이다. 칭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오늘처럼 집에만 있는 날은 공허함이 찾아온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무작정 떠오른 말과 맛있게 먹고 있는 옥수수를 제목으로 잡고 시작한다.


아마도 짜내는 기술은 아이들 초등학교 때 생겼을 거라고 대꾸했다. 아내가 요가원을 운영하는 3년 동안

내가 아이들을 재우며 동화이야기를 해줬다. 두 딸들이 그날 제목을 하나씩 말하면, 그 두 단어를 엮어 이야기를 짜내면서 생긴 것 같다고.. 그때 요가원 본사와 소송을 하며 정말 힘들었을 때인데, 아이들과는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인생은 값싼 옥수수 같은 일상들 속에서 감사 알갱이들을 하나씩 떼어 무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맛있는 옥수수를 먹기까지 가족들 사랑과 주변 도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글쓰기와 행복은 평범한 일상 속을 짜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어디에도 대단한 일상과 행복은 없다.

반복되는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관계 속에 숨겨진 감사와 기적을 찾아내는 작업인 것이다.

올여름도 어머님이 구해 주신 옥수수를 먹으며 무사히 보냄을 감사한다. 네플릭스 "그린북"이란 감동적인

영화를 추천해 주신 교회 간사님도.. 힘들게 일하는 아내도.. 여름방학을 잘 보내고 있는 아이들도..

온 가족이 함께 아침을 먹을 수 있음도..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고 짜내어 감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 본성으로는 아무리 채워지고 흘러넘쳐도 행복해질 수 없다. 그 무엇이 되었든 시간과 함께 익숙해져

일상이 되어 간다. 인생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 속 불안, 불만, 미움, 분노, 무료함, 공허함 들도 짜내야 한다.

글쓰기를 통해 내 안의 어리석음들과 감사함들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비록 그 모습이 구차할지라도, 그냥 얻어지는 추억이나 평안은 없다.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도 뭔가를 짜내는 즐거운 짤순이가 되고 싶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기록된 일상은 먹음직스런 옥수수 알갱이들처럼 빛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