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오늘은 오후 늦게 아내와 한남동을 다녀왔다.
아내 점심 약속을 마치고 돌아와 함께 한남동을 갔다. 토요일 오후라 주차가 힘들다며 꺼리다, 오늘 같은
날씨에도 안 갈 수는 없었다. 공용주차장 대기 줄을 보면서 내 말이 맞았다며 투덜거렸지만, 막상 기다리니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용산주민센터 야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익숙한 한남동 길이 펼쳐졌다.
예전 보다 관광객들과 새로운 가게들도 많아 보여 소풍 온 아이들처럼 돌아다녔다.
아내는 가게마다 들어가 아이쇼핑을 하고, 나는 시원하게 차려입은 청춘들을 구경했다.
실컷 돌아다니다 귀걸이 하나 산 게 전부였지만 아내는 흡족해했다. 다니던 카페들이 사라져 실망하며
돌아오다 좁은 골목길 카페 간판이 보였다. 우리 나름 카페 기준이 있어 의자가 편하고 커피맛이 좋아야 했다. 한남동 골목들은 경사가 있고 넓지 않아 그런 편한 카페를 찾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혹시나 하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니 생각지도 못한 대기줄이 있었다.
막다른 좁은 길 오래된 주택 세 개 층을 모두 리모델링해서 금방 자리가 났다. 시그니처 네로우커피와
수박주스가 일품이었고, 의자와 분위기가 우리가 찾던 카페였다. 성수동에 비하면 지역이 넓지도 않고 큰
상가들도 없는데 아내는 항상 한남동을 가자고 한다. 골목골목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고 조막한 가게들
구경하는 게 즐겁다고 한다. 예전 가로수길이 그랬는데 큰 건물들이 들어오면서 재미가 없어져 동네가 망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장사나 인생도 큰길보다는 좁은 길에서 대박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탄대로를 달릴 때보다는 좁은 길로 들어섰을 때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고난 속에서도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면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잘 나갈 때는 아내에게 큰소리치고 불만도 많았던 것
같다. 장사도 그렇고 투자도 그렇다. 너무 대로변에 차려진 가게보다는 골목 안쪽에 숨겨진 가게가 매력적
이다. 모두가 달려가는 곳보다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 끝에서 기회는 찾아온다.
지금 남은 내 인생을 베팅해야 할 Narrow path는 어디인지 생각하는 주말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