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요즘 아이 핑계로 계속 서촌에 가서 논다.
어제는 항상 사람들이 많아 궁금했던 청하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청국장과 제육볶음이 너무
맛있어, 나머지 메뉴들도 다 먹어 보기로 했다. 날씨가 흐려 걷기도 좋아, 처음 국립고궁박물관에 들어가
봤다. 무료관람인데 볼거리가 많아 놀랐고, 정원에 큰 은행나무와 고목들이 많아 단풍 구경을 가도 좋을 것
같다. 오는 길에 카페에 들어가 창가에 앉아 아내에게 브런치 글을 읽게 했다.
아내와 카페를 가는 큰 이유는 아내에게 백수 일기를 읽게 하고 좋아요를 누르게 하기 위함이다.
대부분 아내 이야기를 쓰다 보니 당사자가 마지막 감수를 해줘야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엊그제 글을 쓰고 나서 아내의 반응이 궁금했었다. 아내는 속마음을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역시나 아내는 펄쩍 뛰었다. 언제 자신이 눈시울이 벌게졌냐는 것이다. 사기치고 있다며 자신이 내 글에
댓글을 쓰겠다며 협박을 했다. 분명 나는 보았고 그렇게 느꼈는데 말이다.
설령 아내 말이 사실일지라도 상관없다. 너무 빈번하게 아내에게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절대 내색하지 않고 겉으론 나에게 빨리 요단강을 건너가라고 구박을 해도 즐겁기만 하다.
오늘은 하루 쉬자며 혼자 한강에 나가 뛰었다. 잠깐 떨어져 있었다고 현관에 들어오자 오빵빵을 외친다.
새마을금고에 가서 다시 대출을 알아봤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모든 대출이 막혔다고 한다.
내가 말도 안 된다며 자꾸 정책 탓을 하자,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대책만 생각하자고 웃으며 말했다.
아내는 무슨 일이 닥쳐도 크게 걱정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다음 스텝을 깊게
생각할 뿐이다. 아내와는 막다른 골목에 서있어도 즐겁게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아내는 지금까지 우리가 헤쳐왔던 일들에 비하면 껌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다 잊고 오늘을 즐겨야 할 것 같다. 큰 딸은 지금 LG 올해 마지막 경기를 위해 잠실 야구장에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야구나 보며 응원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