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물건이 많지 않다. 창문 수리를 하러 오신 기사님이 집을 보시고는 "어디 이사가요?" 했을 정도다. 결혼 1년 뒤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 살림을 꾸리면서 소파도, 침대도, TV도 사지 않았다. 없는 대로 살아보니 살아졌다. 밥솥도, 전자레인지도, 커피 포트도, 에어프라이기도 주변에 나눠줬다. 그리하여 원래 물건이 많지 않은 집이지만 생각이 복잡할 때는 집안을 정리한다. 구석구석 물건을 들어내고 버린다. 그럼 분별없이 이고지고 있던 짐들이 정리되고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지난 주말은 누군가를 질투하는 마음으로 괴로웠다. 동료였던 동생이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 축하하는 마음보다 남겨졌다는, 어쩌면 뒤쳐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누가 얹어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이고지고 메어버린 마음의 짐. 이럴 때는 집안 정리지, 하면서 정리를 하다보니 창고 한 켠 모아두었던 아기 용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닐 포장에 네임펜으로 용도를 하나씩 써두었다. 가제 손수건, 천기저귀, 아직은 낯선 물건들이다.
뱃속 아가에게 미안했다. 잠시나마 아기 때문에 동료처럼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만들고 괴로워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뱃속 아가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일이다. 지금 해야하는 일이고, 지금이 아니면 다시 할 수 없는 일이다. 생각을 정리하니 먼지 쌓인 창문을 닦아내듯 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름 쓰인 아가 용품들을 차곡차곡 다시 넣어두면서 스스로 매었던 짐을 놓아두었다. 집안 살림도, 삶도, 필요한 것만. 내 손이 자주 가 닿는 것만. 마음이 동하는 것만 남겨 두어야지. 다 이고 지고는 몇 걸음 못 가 주저앉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정말 없어도 될 것들은 없어도 살아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