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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글쓰기 첫 번째 글

선한 사마리아인을 바라보며

by 파파스빈 Mar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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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뤘던 미술 전시회를 가리라 마음먹은 날이다. 고흐의 전시회가 만원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던 터라 붐비지 않는 시간을 찾아야 했다. 구정 전날 아마도 설 명절 준비로 바쁠 테니 그렇게 붐비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예술의 전당으로 달려갔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 눈발을 헤치며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운치마저 더해졌다. 한가람미술관을 찾아 출입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가니 예상과 달리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설 명절을 준비하는 이런 날에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흐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있는 모습을 보니 고흐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 길게 늘어선 행렬에 동참하여 나도 조금씩 조금씩 고흐의 그림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시대순으로 전시된 그림들은 초창기부터 말년의 그림까지 수십 점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작가 소개와 시대 배경까지 자세한 설명들이 벽면 빼곡히 적혀있었다.

길게 늘어선 행렬은 마치 아기 걸음처럼 작품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다가도 멈추기를 반복하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무리를 빠져나와 기다리는 행렬 사이사이로 그림들을 감상하며 마음에 와닿는 그림들을 찾기 시작했다. 초기의 그림들은 어둡기도 하고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고흐 특유의 붓 터치가 나타나며 익숙한 고흐의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중 선한 사마리아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어떤 화가의 그림과도 단번에 구별해 낼 수 있는 그만의 붓 터치는 마음을 온화하게 만드는 마술 같은 표현법이었다. 동글동글 유선형으로 붓이 지나간 자국마다 물감의 질감과 함께 느껴지는 포근하고 온화한 느낌은 아마도 그가 사용한 노란색 계열의 색상이 뿜어내는 온기 탓도 한몫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그림이 그의 언어인 셈이다. 하지만 그림만 보고는 또한 그의 인생을 논할 수도 없다. 더 깊은 생각을 미처 못 헤아릴 때도 있으니, 그의 삶과 같이 바라보아야만 그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에는 오만가지의 상념과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판단과 생각과 상상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기에 생각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상상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맘으로 작품 하나를 바라본다.

고통과 죽음은 타자와 나눌 수 없다. 오로지 내가 감내해 내야 할 나의 몫이다. 하지만 때로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 준다면 나눌 수 없는 고통이라 하더라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그림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서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그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모작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착한 사마리아인)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에게 작품 속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는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을 도와줄 한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에 그려진 사마리아인을 보면서 그는 위안받지 않았을까? 그렇게 선한 사마리아인은 고흐의 가슴에 영원히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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