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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ed

트레이시 에민

by 청일


1. 작가 소개


1963년 영국에서 태어난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은 자기 삶의 가장 사적이고 상처 난 부분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한 현대미술가다.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s)’ 세대의 주요 작가로, 그녀의 작업은 때로는 고백적이고 때로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낸다. 사랑, 상실, 몸, 성, 우울, 삶의 파편들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그녀의 작업은 ‘사적인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특히 일상의 흔적과 개인의 경험을 작품의 재료로 삼는 방식은 현대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2. 작품설명: 〈My Bed〉(1998)


〈My Bed〉은 에민이 실제로 우울과 상실 속에서 지냈던 며칠간의 침대를 그대로 옮겨온 설치 작품이다.

구겨진 이불, 엉켜 있는 속옷, 술병, 담배꽁초, 약통, 쓰지 못한 편지들…

삶이 무너졌던 한 시기의 ‘그대로의 침대’가 전시 공간에 놓이면서, 관람자는 한 개인의 가장 깊숙한 사적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뒤흔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난잡한 일상의 한 장면이, 한 인간의 진실한 기록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에민은 몸소 증명했다.

〈My Bed〉은 이후 테이트 미술관 컬렉션에 포함되며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3. 나의 감상


또 한잠을 잤다.

긴 밤은 언제나 그렇듯 순식간에 흘러가고,

눈을 뜨는 순간 하루는 조용히 시작된다.

침대는 휴식의 자리이자, 하루의 끝과 시작이 맞닿은 지점이다.

그곳엔 언제나 포근함과 고요가 머문다.


예전의 나는 어질러진 이불을 그대로 두곤 했다.

어차피 다시 누울 자리라고 생각했고

정돈되지 않은 채로도 삶은 흘러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다 책 모임을 통해 ‘하루를 어떻게 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배우게 되면서 습관이 바뀌었다.

아침이 되면 이불을 가지런히 펴고, 베개를 헤드에 바짝 붙여 올린다.

단정하게 정돈된 침대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고요히 기다리는 작은 의식이 되었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그렇게 다르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도 살아왔지만, 말끔히 정돈된 모습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산뜻함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사람이지만, 가끔 찾아오는 이 단정함은 마음까지 닦아주는 듯하다.


아들이 독립하고, 딸도 긴 유학과 함께한 청춘의 시간을 끝내고 집을 나섰다.

그들의 짐이 빠져나가자 집엔 뜻밖의 빈방 하나가 남았다.

그 빈자리에 나는 미술책과 읽고 있는 책들을 옮겨 두었고, 어느새 작지만 단정한 책방이 탄생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소박한 공간.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더없이 적당한 작은 은신처다.

딸의 독립이 가져다준 예기치 못한 선물이었다.


이제 내 삶은

무언가를 더 채우는 일보다

덜어내고 비워내는 일에 가까워졌다.

내게는 추억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짐이 될 물건들을

내가 먼저 하나씩 정리해 두는 시간.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처럼,

아침마다 반듯하게 정돈되는 침대처럼

내 삶 또한 그렇게 단순하고 가벼운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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