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락종
백락종(1915-1979)한국 전쟁기의 참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기록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분단과 전쟁이 남긴 상처, 가난과 억압 속에 놓인 민중의 현실을 눈앞에 드러내듯 그려냈다.
화려한 기교보다 ‘증언’과 ‘기록’에 가까운 시선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얼굴을 깊은 눈동자와 거친 질감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미술을 넘어,
전쟁을 견뎌낸 시대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하나의 기록물로 남아 있다.
백락종의 철조망은 전쟁 속에서 인간이 처한 극한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림 속 배경은 황량한 노란빛으로 뒤덮여 있고,
그 위를 뒤얽힌 철조망이 거미줄처럼 가로막고 있다.
철조망 뒤에는 여러 명의 인물이 서 있다.
어른과 아이, 남성과 여성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한없이 크고 깊은 눈동자로 관람자를 바라본다.
그 눈은 공포와 체념, 그리고 꺼지지 않는 생의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철조망은 억압의 물리적 경계이자,
전쟁이 인간에게 씌운 보이지 않는 족쇄를 상징한다.
그럼에도 인물들의 눈빛은 완전히 꺼지지 않은 희망,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인간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전쟁을 몸으로 통과해 버린 이들의 시간은
우리가 사는 시간과는 다른 결로 흐르며
깊은 상흔을 안고 살아간다
그나마 살아있어서 겪는 생존의 댓가이며
그 뒤로 이어진 생은 상실이라는 이름의
긴 행군이었다.
수많은 이들은 이름 없이 사라졌고,
누군가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었으며,
또 다른 이는 돌아오지 못한 채
이산의 강 건너편에서 평생을 표류했다.
전후에 태어난 나는
그 현실의 온도를 온전히 알 수 없다.
다만 빛바랜 사진 몇 장과
화가가 남긴 한 폭의 그림 앞에서
그 참혹함의 윤곽을 더듬어볼 뿐이다.
어느 땅에서 벌어졌든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죽음이 일상이 되고,
절망이 공기가 되며,
인간의 존엄은 흩어진 먼지처럼
발밑으로 가라앉는다.
백락종의 그림 속, 철조망.
그 뒤에 선 사람들의 눈동자는
이상하리만큼 크고 깊다.
아우슈비츠의 포로들,
영화 속 절망의 장면들,
그리고 한국전쟁의 잊힌 얼굴들을
한꺼번에 불러낸다.
저 철조망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을 순간들을
나는 감히 가늠하지 못한다.
그저 그림 속 눈동자가 전하는
깊고 어두운 침묵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을 뿐이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이 일상이던 수용소에서도
그는 마지막 자유만큼은 빼앗기지 않았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목표라는 이름의
가냘픈 불씨 하나를.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은
그를 영원 속으로 데려갔고,
우리에게는 어둠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주는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징비록,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 시대를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이란 이렇게도 귀하다.
사라질 뻔한 목소리를 다시 살려내고,
누군가의 삶을 시대 너머로 건너가게 하는
가느다란,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다리.
전쟁을 겪은 화가의 눈이 본 참상이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았기에
전후 세대인 우리는
비록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고통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저 그림 속 인물들은
영원히 철조망 속에 갇힌 듯 보이지만,
어쩌면 그 영혼만큼은
이미 자유의 땅을 향해 떠올랐을지 모른다.
전쟁은 끝났고,
삶은 다시 모질게 이어져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우리의 피 속에는 그날의 아픔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맥박처럼 흐르고 있다.
그들의 고통이 남긴 유산이
앞으로의 세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나는 그림 앞에서
오래된 슬픔을 어루만지듯
긴 침묵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