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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Aug 28. 2024

그동안 뭐 하느라 브런치를 못 했어?

대놓고 핑계를 대보자

반갑다

브런치


핑계 #1-방학이었지


드디어 개학을 했다. 건순이가 초딩이 되고, 두 놈이 함께 애미애비와 같이 백수처럼 집구석에 드러누워있는 복작거림이 마무리되었다. 남매가 모두 학교에 갔으니 그걸로 되었다. 방학 동안 늘어진 덕분에 자꾸만 감기는 아침의 눈꺼풀을 억지로 뜨느라 애썼다. 눈곱을 달고 간들 어떠하리. 지금 이 순간, 건순이, 건만이의 꼬랑내 나는 신발이 이 집 현관에 없다.


마구 신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브런치앱이 어디 있더라. 한숨 쓸어내리고 아이패드를 열어본다.

으이그. 이놈들. 화면에 떡 하니 유튜브앱이 알록달록 떠있다. 느그들이 애미를 피해 화면 각도를 조절해서 본들, 시청 기록이 이리도 친절하게 남아있단다.


올림픽이 끝나서 그런가. 건만이 머릿속의 스포츠축제도 막을 내렸나 보다. <6.25 전쟁 10대 무기>, <백마고지 1부>, <유퀴즈-1% 최정예특수요원 편>, <해병대 관점에서 보는 6.25 전쟁> 죄다 총소리를 듣고, 전쟁 이야기를 보았구먼. 이렇게 무기와 전쟁을 후벼 파면서 군대는 안 간다는 아리송한 아들놈.


자자, 건순이는 무얼 봤니. <발레리나 지니 직업탐험>, <쿠로미 팬케이크>, <슬라임챌린지>가 보인다. 애미에게 요즘 사달라고 조르거나 “엄마는 그거 알아?” 하고 물어봤던 것들이 고스란히 기록에 있다.

아직은 투명하고 귀여운 1학년 딸과 응큼하고 대답 없는 4학년 아들의 차이가 새삼스럽다.

오랜만의 교실향기는 어떠니?


아이패드가 아이들 눈에 있을 때 필요 없이 버려졌던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 본다. 오호. 얼마만인가.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꼬무락거리는 이 느낌. 글 쓰는 감이 떨어졌건 붓 잡는 손이 떨리건 뭔 상관인고.

아무도 잔소리해주지 않는 나이의 애미는 스스로 사부작거려본다. 나름의 자기 주도 생활자로 홀로 남은 거실의 향기를 맡으며 반갑게 써 내려간다.




홍디의 수채화디자인 원데이클래스 @HONG.D


그립다

클래스


핑계 #2-일을 벌였지


그동안 브런치를 못 한 또 다른 핑계. 갑자기 일을 벌여 정신없이 바빴다. 새로운 경험에 달궈지고 바쁨에 부끄럽지 않아서였을까. 글을 못 쓰면서도 마음은 솜사탕 같더라. 오랜만에 설레고 들떴던 경험은 바로,


홍디의 수채화디자인 원데이클래스

아이들 여름 방학 직전까지 7월에 세 번의 원데이클래스를 열었다. 흘러가는 소중한 기억들은 아껴 담아두어야지.




디자이너로 일하던 오랜 회사생활을 마치고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림이야기를 쓰고 그리면서 독자분들께 이런 말씀을 들었다.

홍디님 덕분에 수채화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림 배워보고 싶은데 똥손이라도 가능할까요?
재료 준비부터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림을 그리면 정말 힐링되나요?
왕초보를 위한 그림 수업 해주세요.


관심 가져주시는 감사한 분들 덕분에 용기 내어 수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걱정과 근심 따위 무수히 많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무엇을 대하고 누구를 만나건 정성을 기울이자. 22년 동안 패션일을 하면서 디자인만큼 중요한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마음먹은 게 시작이고 시작이 반이라지만, 백지부터 클래스를 준비하려니 준비가 막막하긴 하더라. 미술재료 구입부터 강의 자료 준비, 장소 섭외, 고객모집과 소통 등 모든 과정은 어려웠다. 아무도 시키지 않고 어디에 매뉴얼도 없는 불친절한 길이랄까.


허나 홍디가 스스로 일을 벌인 이유가 무엇인가.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힘들어도 좋아서 무언가에 몰입해 봤던 분은 이 기분 아실 거다. 퍽 오랜만에 ‘일이면서도 놀이처럼’ 말릴 수 없는 에너지가 샘솟았다.


팍팍한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수채화를 만나 치유했던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과거의 나는 돈을 버는 데에만 시간을 쓸 줄 아는, 여유가 가난한 워킹맘이었다. 그림을 배운 후로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집중할 수 있는 백조가 되었다. 치유이고 위로였다.


수채화의 위로


새 파레트에 물감을 짜면서 수채화를 처음 배우던 날처럼 설레었다. 클래스에 참여해 주시는 분들께 드릴 네임택을 만들면서 재미와 보람이 물결쳤다.


초보자를 위한 소규모 맞춤형 클래스이기에, 수업 전에 배우고 싶은 스타일을 각자 정하고 1:1 가이드를 준비했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 나만의 수채화디자인을 완성하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붓질에 수업이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진심을 다해 집중해 주시는 모습들은 감사+감동+감격의 콜라보였다.


홍디의 수채화디자인 원데이클래스 @HONG.D


https://brunch.co.kr/@spacious/213

수업 참여도 감사한데 이렇게 글까지 발행해 주신 ‘다정한 여유’ 작가님, 덕분에 인복을 깨달아요.




원데이클래스를 기획하면서 힐링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선물을 받는 경험이었다. 붓에 집중하고 스스로 원하는 걸 알아가는 시간을 함께 하니, 나 또한 힐링이자 위로였다. 꽤나 좋은 핑계이야기 당장은 여기까지. 기록은 추억을 더한다.



홍디의 원데이클래스 상차림 @HONG.D



+덧마디

글을 쓰는 시간도, 쓰지 않는 시간도

모두 의미가 있음을 이제 알지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작가님들의 오늘이

유일하게 빛나는 의미 있는 하루라는 것

꼬옥 꼬집어 그대의 오늘을 응원해요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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