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여유 Aug 03. 2024

나를 위한 적극적 힐링 타임

브런치 수업 동기 작가님이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작가님의 그림 보며 힐링했다. 붓으로 그려내는 하늘과 식물들이 어찌나 이쁘던지 모든 그림이 탐났다. 그림과 글을 보며 내내 작가님의 재능에 감탄했던 터라 소식을 듣자마자 신청하러 한달음에 달려갔다.


https://brunch.co.kr/@hongdi/108


클래스가 열리는 장소로 운전해서 가야 해서 비 올지 걱정이었다. 초행길인 걸 하늘도 알았는지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아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날씨 운이 따라주는 것 같아 시작부터 마음이 드는 하루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는데 알록달록 예쁜 팔레트가 반겨준다. 이름이 쓰인 네임택도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정성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나의 이름이 쓰이고 불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댔다. 생각해 보니 최근 들어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보탬이 될만한 수업을 들었던 것을 제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은 오랜만이다. 온전히 나를 위해 준비된 팔레트도 네임택도 소중하다.

차례차례 예쁘게 짜여진 팔레트가 이렇게 예쁜 것이었구나.

이번 원데이는 수채화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학교 수업 중 미술수업 이후 처음 잡아보는 수채화 붓이다. 그림 그리는 것에 막연한 동경이 있어 여러 수업을 들었다. 슥슥 원하는 것을 그려내고 싶은 마음에 색연필, 유화 수업을 들었다. 도전하기 더 수월해 보이는 선택지 중에 수채화는 없었다. 종이를 고르고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붓에 물을 묻히고 원하는 색상의 물감을 골라 여러 번 문지른다. 어떤 식으로 그려야 하는지 기초부터 배웠다. 도톰한 면지에 물을 잔뜩 먹이고 물감을 떨어뜨리니 빠르게 퍼진다. 물감이 퍼지는 것과 동시에 마음에도 기분 좋음이 스며들었다. 물을 얼마나 쓰는지에 따라 물감의 농도에 따라서 같은 붓질에도 다른 모양이 나왔다. 같은 내용을 배우면서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 따라 각자 다른 결과가 따랐다. 어떤 것이 더 멋진 것인지 기준은 없다. 각자 기질에 따라 그리고 각자 성향에 따라 마음에 드는 그림이 다르다. 서로를 존중하며 갈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나이를 충분히 먹어서일까, 많은 경험을 하고 나설까. 내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두는 선생님을 두는 것은 이렇게 든든한 것이구나. 어떤 그림도, 결과도 멋지다고 칭찬해 주는 동료를 두는 것은 이렇게 즐거운 것이구나. 행복한 마음 한가운데를 살짝 찌그러뜨리며 아이가 비집고 들어온다.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마음껏 하도록 뒀는가 돌아본다. 물에 물감을 풀어내니 마음도 같이 풀어진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봐야지 슬쩍 결심한다. 알록달록 풍선그림을 아이에게 선물해야겠다 싶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만큼 아이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얼마 전에 누군가 지금 뭐가 가장 필요한지 묻는데 '시간'이라고 답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튀어나온 답이 조금 의아했다. 전업주부인 나에게는 여유 있는 오전 시간이 있다. 올 들어 아이가 부쩍 커서 혼자 학원 셔틀을 타러 간다.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던 시간이 줄었다. 여느 때보다도 시간이 많다고 볼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했을까. 이후로도 한참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해 안개가 가득 낀 하늘을 보듯 답답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맑게 갠다. 이거였다, 내가 답했던 시간. 내가 원했던 시간이라는 것이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었구나. 따져보면 그동안 스스로를 알기 위한 시간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어색했다. 호불호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식당에 가서 메뉴 고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지 알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아는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지만 나는 원래 그래, 지난번에도 이게 좋았어,라고 습관적으로 선택했던 것 같다. 그게 정말 좋은지, 왜 좋은지 찬찬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왜라고 묻는 순간 확신이 사라졌다. 뚜렷한 줄 알았던 취향이 갑자기 물에 풀어진 물감처럼 경계가 흐릿해진다. 이제부터라도 걸음마 걷듯이 한 걸음씩 해봐야겠다. 평소처럼 고민 없이 쭉쭉 앞으로 나가기만 하지 말고 멈춰서 생각하고, 선택한 것에 대해 되짚어 봐야겠다.

어떤 색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것이 즐겁다.

새로운 것을 해보면서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생소하고 낯설지만 기분 좋다. 마음을 채우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히려 틈이 생기고 너그러워진다. 아이 하교 시간을 맞추느라 서둘러 왔는데도 마음은 여유롭다. 그런 엄마를 아이도 바로 알아챈다. 엄마가 배워서 그린 거라며 아이에게 선물한다. 포근해진 공기에 서로 마음도 둥글둥글해진다. 숙제로 실랑이하던 날카롭던 어젯밤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이게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몰라도 이 순간을 붙들고 싶다. 아이와 투닥거리고 난 후에 나를 탓하고 반성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며 마음을 채워야겠다. 그게 더욱 효과가 좋을 것이 확실하다. 짧은 원데이 클래스 동안 그림 말고도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