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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ul 31. 2024

돈이 있어도 커피를 살 수가 없어요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여유 있어 커피를 사러 카페에 갔다. 주문은 모두 키오스크로 받고 있었다. 줄이 길어서 키오스크 앞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자 어떤 메뉴를 먹을지 메뉴판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바로 앞에 계시던 할머님이 차례가 되자 "이거 할 줄 몰라서... 아이스라테 하나만 주문해 줘요."하고 카드를 내미셨다. 세련된 할머니셨지만 기계 앞에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뒷사람에게 부탁하셔야 했다. 주문하시는데 오래 걸려도 기다릴 수 있었는데 아마도 기계 앞에서 주눅이 들어 시도해 보기 겁이 나셨나 보다. 처음 보는 키오스크 앞에서는 나도 많이 헤맨다. 뒤에 줄이 긴 키오스크 앞에서는 자꾸 실수를 하게 돼서 처음부터 다시 주문하기도 한다. 누구든 익숙하지 않으면 잘 못할 수 있다. 잘하려면 여러 번 해봐야 한다. 다들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르신분들이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시거나 안절부절못하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여행 중에서 보았던 부모님도 같은 모습이었다. 카트를 타러 갔는데 가는 길에 혹시 몰라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예약하면 할인을 해줬다. 입장권을 발권하는 곳에서 예약했던 것을 확인한 부모님은 본인들끼리 왔다면 할인받지 못한 채 티켓을 끊었을 거라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비싸게 여행하는 거라며 농담하시며 웃으시는데 뒤에 있던 난 씁쓸했다. 요즘은 비행기도 온라인 체크인, 사전 좌석 배정을 해야 편리하고 유리하다. 호텔도 역시 모바일 체크인과 체크아웃이 가능했다. 나와 함께 여행을 오신 게 아니라면 다들 손 안에서 체크인하고 적게 기다렸을 시간에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도 좋은 자리를 선점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입이 썼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한 이전과 180도 달라진 환경이 문제가 아니다. 생소하고 새로워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늘 누군가 함께 다닐 수 없는 노릇이고, 누군가 함께 다니며 알아서 일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고 기회 안에서 적응하여 스스로 할 수 있는 완충지대가 있어야 한다.




은행에서 근무했을 때, 모바일 뱅킹이 처음 나왔다. 인터넷 뱅킹과 폰뱅킹이 아닌 모바일 뱅킹은 그전까지와 아주 달랐다. 걸어가면서 이체하고 버스에서 입금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획기적으로 느껴졌다. 인터넷 뱅킹 사용하던 사람으로서 거의 모든 면에서 정말 편리해졌다고 생각했다. 이토록 편리한 모바일 뱅킹을 모든 고객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이가 많으신 분들에게는 장벽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폰뱅킹이 좋다고 하시는 고객분들이 많았다. 젊은 사람 모두가 모바일 뱅킹을 반긴 것은 아닌 것처럼 어르신 고객 중에도 흔쾌히 받아들이시는 분도 있었다. 처음 배우실 때는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기도 했다. 다음번에 오셨을 때 다시 반복해서 알려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해보시려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때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진 지금은 그 고객이 더욱 존경스럽다. 어렸던 그때는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이해가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려지고 장벽이 높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니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으셨던 그분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도 두려움과 불편함을 참아내고 그분처럼 용감하게 해보고 싶다. 미국이었던가, 외국의 어느 나라에서는 디지털 약자를 위해서 발전된 기술을 바로바로 100% 실현하고 적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발전하는 속도를 누가 얼마나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격차가 생길 수 있고 그 격차는 불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어르신들을 위한 키오스크 수업이 있다고 들었다. 수업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수업 내용에 실질적인 체험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다. 키자니아나 잡월드라는 아이들 직업 체험교육관이 있다. 아이들은 작업복을 입고 해당 직업이 하는 일을 실제 체험한다. 축소되어 있기도 하고 일부의 작업을 하는 것이지만 어떤 것들은 실제 모습과 꽤 비슷하다. 디지털 기기 체험도 이런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 실제로 키오스크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커피를 주문하는 거다. 여행자 코스를 선택하면 기차표를 끊고 비행기 좌석을 등록하고 숙소를 예약하는 과정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연습해 보고 체험할 수 있다면 금세 익숙해질 것이다.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테두리가 높아진다. 기술이 발전하고 정교해질수록 테두리가 견고해진다. 높아지고 견고해진 테두리 안으로 누구든 쉽게 들어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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