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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Oct 15. 2024

즐거운 날

나의 역주행 초딩일기 #1


1989년 9월 17일 일요일. 흐리고 비.

< 즐거운 날 >

정말 즐거운 날 신나는 날이다.
할아버지 육순 생신 겸 우리 막냇동생의 돌이다. 우리들은 돈이 없어 선물은 준비 못하고 노래와 편지를 써서 준비했다. 불러 드리고 읽어드렸더니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들에게 길게 연설하듯 말씀을 해주셨다.

또 더 신나는 일은 남동생이 돌상에서 연필을 잡아서 공책에 막 낙서를 한 뒤 돈과 떡을 비비더니 수줍어서 엄마품에 안겼다. 안긴 뒤 다시 낑낑대며 송편을 입에 대며 웃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동생아, 너는 연필 잡고 돈 잡고 떡 잡았으니까 공부 잘하고 부자 되고 튼튼한 사람이 될 거야. 누나도 널 도와줄게. "

지금도 나중에 큰 동생의 모습이 내 눈앞에 떠오른다.


역주행 초딩일기 @HONG.D




2024년 10월 +덧대는 이야기


11살 홍디야.

35년 전 '돐' (읍니다 시절인가)이었던 남동생이 아들을 낳아 어제 '첫돌'을 맞았단다. 우리 첫 조카의 첫 생일 파티. 짙은 청록색 한복을 고이 맞춰 입은 동생네 가족이 돌상 앞에 선 모습을 보니, 눈물이 닳아 오르더라. 기저귀 갈아주고 포대기로 업어주던 9살 차이 막둥이가 늠름한 아빠가 되었어.


조카는 2분 여의 돌잡이로 밀당을 하며 손님들을 애타게 했단다. 실도 쓰다듬고 마이크에 손을 대었다가 청진기와 연필을 스윽 밀고 판사봉을 어루만진 후에 돈을 잡았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이긴 해도, 돌잡이 아이가 그리 신중하게 할 수 있구나 놀라웠어.

이렇게 기록을 해두면 훗날 또 재미지게 곱씹을 날이 오려나. 할머니 홍디가 되어서라도 말이야.


조카의 돌잔치 @HONG.D


이제 건만이가 딱 지금의 너와 같은 열한 살이거든. 엄마가 되고 건만이, 건순이를 키우면서, 어린 동생을 돌보던 육아 경험이 꽤나 도움이 되었었어. 어릴 적부터 장녀로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고자 했던 너에게 참 애썼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글씨도 의젓하게 썼구나. 날마다 기분 따라 글씨체를 여러 가지로 썼었지? 이 날은 글씨마저 즐거운 날이라는 느낌이 들어. 선생님께서 빨간펜으로 적어주신 코멘트를 밑줄 그으며 보았던 기억도 난다.


너의 소중한 일기를 아껴 읽고 추억하며 기록해 볼게. 자주 만나 보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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