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주행 초딩일기 #3. 가을날씨 & 변덕쟁이
1989년 9월 8일 금요일. 날씨변덕.
< 가을 날씨 >
요즘 날씨가 정말 아리송하다. 맑았다, 흐렸다, 맑았다, 비 왔다…
‘하늘, 구름님, 잘 부탁드려요!’
이렇게 애원해도 소용없다는 듯 비는 쏟아지고, 또 개었다가… 가을은 변덕스러운 계절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변덕쟁이 가을님! 비만 뿌리지 말고 아름다운 가을을 꾸며 보세요. ‘라고 나는 또 맘속으로 외쳐 본다.
1991년 7월 19일 금요일. 날씨 또 변덕.
< 변덕쟁이 >
날씨가 심술이 났나 보다. 정말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심하다.
왜 이리 화가 났을까? 금방 해가 반짝이고, 또 금방 번개가 반짝이고... 천둥까지 치니 온 세상이 요란하다. 못난 심술꾸러기가 하늘로 올라갔는지, 날씨가 요란하니 나까지 화가 난다. 날씨의 변덕 때문에 밖에 나가 놀다가 몇 분만에 다시 들어오기를 벌써 여러 번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너무 약 오른다.
제발, 조용해졌으면 좋겠다. 딸꾹질은 물 먹으면 되는데 변덕은 어떻게 해야 멈춰질까?
2024년 10월 19일. +덧대는 이야기
< 물성매력 >
초딩 홍디야.
얼마 전 2025년 트렌드를 전망하며 나온 키워드 중에 ‘물성매력’이 있더라. 손에 잡히는 상품의 매력을 뜻하는데, 디지털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물질의 형태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는 거야.
그래서일까. 빼곡한 하루의 어느 틈이든 비집고 들어가 너의 일기장을 펼치고 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꼬깃한 하루를 넘기며 후루룩 옛 향기를 살피는 경험. 엔도르핀에 취하고 감각을 채우고 정서를 챙기는 의식이 된달까. 그냥 나도 모르게 자꾸만 끌려. 11살의 너도 그랬니.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담겨있는 너의 시선을 따라가며 2024년의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날씨를 타고 하늘을 올려보는 어린이 었구나. 내가 지낸 오늘도 결이 다르지 않아. 35년이 지난 어른도 툭하면 하늘을 보고 사진을 남긴단다. 방금 떨어진 가을잎을 그리려고 주워 오고, 가을비에 젖은 낙엽도 살피고 말이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크는 걸까. 며칠 전 8살 건순이가 하굣길에 발을 쿵쿵 짚길래 무얼 하나 물어봤어.
“엄마, 바스락 소리 나는 낙엽
같이 찾아볼래요? ”
집에 오는 길에 평소 같으면 다리 아프다, 간식은 뭐냐, 친구랑 놀고 싶다 조잘대는 칭얼 공주거든. 그날은 누가 더 큰 바스락 소리를 찾나 듬성듬성 금세 집까지 걸어왔어. 흘러가는 일상과 떨어지는 생각을 글로 담아두고 싶다. 너처럼.
오늘 날씨는 비가 세차게 지나가고 가을 하늘이 높게 눈이 부신다. 11살 너처럼 마지막 한 줄 적을게. 일기장아! 내일 또다시 만나자!
고맙다.
1989년 7월 12일 수요일. 흐림
< 맘에 드는 날씨 >
어제 비가 와서 흐린 날씨.
어제 비가 와서 갠 날씨.
어제 비가 와서 좋은 날씨.
어제 비가 와서 맘에 드는 날씨.
오늘 날씨.
"즐거운 아침!" 하고 나는 소리쳤다. 공부하기에도 뛰어놀기에도 먹기에도 노래하기에도 맘에 들고 적당한 날씨이어서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오늘 날씨 참 좋구나!" 하시며 엄마께서도 내 말에 맞장구치듯 말씀하셨다.
울상 지었던 하늘이 예뻐지니 괜히 내 마음도 좋고 또 좋아지는 것 같다.
일기장아! 내일 또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