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브런치작가의 위로-00이 떨어질 때
위로 #1.
글발이 떨어질 때,
VVIP 고객을 떠올려 봐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꼬박 1년이다. ‘홍디’라는 필명으로 불린 지 딱 1년. 아직 출간은 셋째 출산보다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쓰고 그리는 ‘작가’로 지내는 게 벌써 일 년이다.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어찌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쓰는 세상의 지도를 펼칠 수 있었을까. 브런치집 오픈 1주년을 맞이하여 감사를 힘주어 외쳐본다. 쓰기 전의 길로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으므로.
집도 글도 사람을 닮고,
그 사람을 담는다.
1년이라는 시간이 훌러덩 출렁하고 지나간 듯 하지만 늘 잔잔하지는 않았다. 브런치작가로 합격하고 두어 달은 자나 깨나 글쓰기에 풍덩 빠져 참방참방 물장구를 쳤었지.
그러다 가정의 근심이 쓰나미로 몰아쳐 브런치집에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휴업하는 동안 쓰지 않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는 걸 배웠다. 어느새 드넓은 바다로 걱정의 파도가 밀려나며 쓰고 싶었고, 쓸 수 있게 해 준 큰 힘이 있었다. 바로, 브런치집 VVIP 고객분들. <슬초 브런치프로젝트 2기>로 만나 함께 읽고 쓰며 노치원까지 가자고 약속한 동기들이다. 글동무가 되어준 스머프 작가님들의 하늘빛 응원과 댓글은 나만의 속도를 인정하고 노를 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감사하다.
홍디의 브런치집은 바닷가에 오픈을 한 것 마냥 너울이 들락날락했다. 아마도 홍디네 뿐 아니라 브런치에 문을 연 집집마다 파도가 철썩일 거다. 집채만 한 거센 파도가 들이닥칠 때는 쓰기가 힘이 들더라. 그럴 땐 읽자. 그조차 못 할 땐 쉬어가며 생각하자. 읽고 쓰고 싶다고.
브런치 세상의 글을 살피며 공감하고 배운다. 작가님들을 알아가고 라이킷과 댓글로 소통하며 에너지를 얻는다. 꾸준히 허우적대다 보니 기쁨의 파도도 치더라. '다음 메인' 화면이나 '브런치스토리 인기글'에 스쳐가기도 하고, '오늘의 작가'에 오르기도, '에디터픽'에 소개되기도 하고 말이다. 꽤나 크게 반가웠던 소식은 브런치집 간판에 ‘창작 크리에이터’ 배지가 달렸던 것. 소소한 이벤트도 진행하고 배지 득템 글도 발행했었지. 형광색 S딱지에 관심 있으신 작가님들께 살포시 소개한다. 믿거나 말거나 홍디스타일로.
https://brunch.co.kr/@hongdi/101
위로 #2.
낙엽이 떨어질 때,
제철을 걷고 하늘을 보고 오늘을 살펴봐
가을이 떨어진다. 짙어져 가는 계절을 보내고 다시 만나려면 나이테를 한 줄 더 그을 만큼 기다려야 한다. 마감은 있으나 기한은 모르는 유한한 인생에서, 낙엽비 떨어지는 늦가을을 앞으로 몇 번 더 만날까. 후하게 쳐도 지금껏 만났던 가을의 횟수보다는 많지 않겠다.
틈을 내서
쉼에 관심을 가지고,
제철의 하루를 누리자.
가을을 만끽해 본 경력은 퇴사 이후부터니까 고작 2년 차다. 직장에 몸담았던 22년 동안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몰랐고 사뭇 무시했다.
가을아, 몰라봐서 미안해. 사무실에서 디자이너로 트렌드를 제안을 하고 칼라칩을 자르고 붙이면 뭐 하누. 형형색색 물드는 대자연의 신성한 바깥 풍경은 살피지도 못하고 살았다.
가을아, 무시해서 미안해. 매출이 중요한 브랜드에서는 여름과 겨울 시즌에 치여서 판매기간이 짧은 가을을 쳐주지도 않는다. 아름답고 소중한 시기를 슬쩍 넘겨버렸던 것.
10월의 마지막 날. 운동 메이트들과 동구릉 가을길을 걸었다. 일주일치 수다거리 입에 물고 매주 만나는 동네 삼줌마들. 맛집 찾아 먹고 일만 걸음은 너끈히 움직이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겨본다.
바스락거리는 걸음과 살랑이며 내려앉는 낙엽눈, 반짝이는 하늘빛이 눈이 부시다. 다둥이 카드로 무료입장 찬스를 누리며 자식들의 존재만으로 천 원어치 효도를 받아 감사하다고 웃어젖혔다.
글을 쓴 후로는 유일한 하루를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굴러다니는 가을잎도 몽글거리는 구름 떼도 죄다 글거리, 그림거리이므로.
위로 #3.
당이 떨어질 때,
그림멍 쉴멍 쉼에 관심을 가져봐
하루를 촘촘하게 애쓰다 당이 떨어지면 충전이 절실하다. 카페인 수혈하며 달달하게 그려본다. 무화과 케이크도 낙엽 못지않은 제철 그림이네. 가을 무화과가 그렇게 맛있다카더라.
브런치 세상에서 쓰는 지도를 펼친 후, 그리는 길에도 변화가 있었다.
퇴사 후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수채화를 인스타그램에도 차곡차곡 소개하기 시작했다. 잘난 척, 좋은 척, 있는 척, 예쁜 척, 척하는 것 딱 싫어하는 홍디로서는 SNS를 시작하는데 큰 결심이 필요했다. 미술 전공자도 아닌 데다 취미로 이제 막 붓질을 시작한 백수 디자이너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저 실력보다 취향으로, 나만의 스타일로 브런치와 인스타에 콘텐츠를 쌓아갔다. 글 조회수가 대박 나거나 릴스가 터진 적은 없지만, 감사하게도 홍디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올여름 용기 내어 수채화디자인 원데이클래스를 오픈한 후 이제 가을시즌까지 마무리 단계이다. 왕초보를 위한 소규모 맞춤형 힐링 수업. 맨몸으로 흰 도화지에 준비를 시작하며, 두려움 따위는 물과 함께 날려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패션일을 스무 해 넘게 하면서 디자인만큼 중하게 익혔던 건 고객을 헤아리는 것. 홍디를 찾아와 주시는 고객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림 스킬을 키워주는 체계적인 레슨을 원하시는 게 아닐 거다. 초딩 이후로 붓을 처음 잡아보는 설렘이 있으시려나. 그림은 잘 그릴 수 있을까 우려하며 오시겠지.
누구를 대하고 무엇을 만들건 세심하게 살피고 정성을 다하고자 한다. 진심이 통하고 결이 맞는 분들과 인연을 맺는 경험을 하고 있다. 미치도록 가슴이 부시는 중.
그리는 길의 목적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진로를 거듭 재탐색 중이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홍디의 강의 모습을 보신 한 선생님께서 좋은 기회를 제안해 주셨다. 덕분에 고등학교에서 수채화 디자인 진로체험교육을 무탈히 마쳤다. 여고생들과 함께 붓질을 해보는 경험은 상큼 발랄했다.
얼마 후에는 초등학교 학부모님 대상으로 <나만의 수채화 엽서 만들기> 강의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여건에 따라 수업을 맞추어 기획해야 한다. 낯설고 번거로운 준비를 즐기는 나의 모습을 보면, ‘개별화’가 1순위였던 강점검사 결과가 떠오른다.
1년 동안 브런치스토리와 함께 한 기록을 적어보았다. 이 글에 떨어진 위로들은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브런치작가 합격한 기쁨은 잠시 뿐, 막상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글을 발행해도 딱히 반응이 없어 자신이 없어진다.
브런치에 글 쓴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자꾸 쓰지 않을 이유와 핑계를 찾는다.
이런 마음 든 적 있으신가.
욕심을 내보자면 이 글이 브런치에서 함께 쓰는 작가님들께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 홍디처럼 처음 브런치 지도를 펼친 새내기 작가님들, 브런치집 휴업 중이신 분들께서 그냥 키보드 위로 손을 올리시면 좋겠다.
좋아서 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가리어져 있던 길들이 열리더라. 글을 쓰면서 펼쳐진 일들은 직장생활에서 디자이너로 경험했던 덕업일치와는 성취의 수위가 다르다.
누구나 내 삶의 주인공이자 작가이다. 좋아하는 지도를 펴고 방향을 찾아가자. 백지 지도여도 괜찮다. 종이 위로 뚝뚝 떨어지는 순간들이 모두 다 글감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가며 길을 만들어보라. 삶의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이 되어줄 테니.
+덧마디
브런치집 오픈 1주 차 이야기 다시 읽어본다. 이 글을 쓰던 1년 전, 브런치작가에 합격하고 끓어올랐던 열정이 떠오른다.
글쓰기도 툭하면 약발이 떨어지더라. 퇴사 후 까딱까딱하던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 쓰는 길목을 잊지 말아야지.
https://brunch.co.kr/@hongdi/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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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하늘을 그려드려요> 이벤트 두 번째 그림 이야기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