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쓰려고 한 글은 뒤로 미뤄두고 싱크대 청소에 몰입한다. 벌써 몇 주째인지 모르겠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문장은 끝이 없으나, 야릇하게도 문장을 끌어다 실체가 있는 활자로 옮기기가 어렵다. 마치 마음속 사랑을 말로 뱉지 못하는 오래된 연인처럼.
권태, 권태가 찾아온 것인가 생각해 본다. 예전에는 잠시의 틈만 있으면 글을 쓰고 싶었다. 다른 일을 미뤄두고라도 글을 쓰는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시간은 넘칠 만큼 있는데도 손끝이 굳어버린 듯하다. 생각이 끊이지 않는데 쓰는 일을 자꾸 미루니 밤잠을 설치게 된다. 낮에는 괜히 다른 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청소를 하거나, 다른 이의 글을 읽거나 하며 생각으로부터 도피한다.
이러니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를 떠올릴 수밖에. 한때는 쏟아지는 감정과 생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이 움직였는데, 이제는 물속에 빠진 무거운 돌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랑이 식었다기보다는 그저 익숙해졌다고 변명하고 싶다. 처음의 불타는 사랑은 표현할 말이 수도 없이 많지만 생활처럼 자리 잡은 사랑은 쉽게 표현하지 못하듯.
이 권태가 지나가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억지로 피하려 하지 않고,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 보기로 한다. 손이 가지 않으면 가지 않는 대로,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 대로. 언젠가는 다시 문장이 나를 찾아올 것이고, 나는 또다시 그것을 붙잡아 기록하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