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가 데이지 Aug 19. 2024

삶이라는 여행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싱가포르에서 만난 로라


싱가포르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비는 억세게 나를 반긴다.

인도네시아 바탐과 불과 한 시간 거리이지만, 바탐과 매우 다른 공기가 감돈다.

비가 송골송골 맺힌 버스 창가 너머로 수많은 마천루가 싱가포르의 위엄을 드러낸다.


중국계로 보이는 버스 기사는 오늘도 어김없이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을 맞이한다.

일부 인도계 승객들 사이로 버스 카드가 기계에 닿자, 중국어와 영어가 울린다.

싱가포르에 발을 들이자마자 보이는 사람들의 생김새와 들리는 사용 언어는

다양성이란 단어를 감각으로 느끼도록 구체적으로 펼쳐놓는다.



호스트 로라 집의 수영장에서


싱가포르에서 묵게 될 호스트 집으로 가는 길,

멀리서 본 마천루 숲 속으로 점차 진입한다.

한 빌딩에 들어서니 지도는 도착함을 알린다.


높이가 높아 중간에 승강기도 갈아타야 하며

넓은 수영장과 탁 트인 야외 공용 공간이 있고

밤이 되면 저마다 자신의 빛으로 이루는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호화로운 상황이 처음이라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을 아끼지 않는다.

호스트는 상냥하게 웃으며 집을 소개한다.


독일인인 로라는 독일에서 대학을 마친 뒤,

싱가포르 미디어 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계속해 변화하는 미디어에 관심이 갖는 그를 보며,

비슷한 분야를 전공하는 나도 훗날 그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려본다.


밥을 먹기 전 항상 가족들과 다 같이 손을 잡고 감사함을 이야기했다는 로라.


그가 보내온 가정생활을 듣고 있으니, 그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를 알게 된다.


Artscience museum 입구에서


로라의 제안으로 근처 박물관을 향해 산책을 나선다.

마리나 베이로 이어지는 강을 길목 삼아 걷는다.



황폐해진 지구를 도망쳐 나온 인류가 지내는 새로운 공간에 온 듯하다.


비행선은 둥둥 뜨며 커다란 터널을 지나가는 위성이 상상 속에 그려진다.


어김없이 평화로운 터전은 놀랄 만큼 세련된 잔잔함을 품고 있다.


잔잔함 위에서 사람들은 말총머리로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조깅을 하고 있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보니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에너지를 느낀다.



로라도 싱가포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자신의 건강한 삶을 구축해 가고 있다.

매번 아침에 일어나 조깅 혹은 수영하는 로라.

그의 솜사탕같이 달콤한 미소와 포근한 말투는 내 마음을 잔잔하게 만든다.


"로라,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는 '삶'을 담고 있었고,

추상적인 내 질문에도 로라는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산뜻하게 대답한다.


"규칙적인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고 싶어.

아침에 조깅하고, 가족들과 맛있는 아침을 먹으며,

저녁에 돌아와 여유를 즐기는 삶 말이야."



반복된 일상이 가져다주는 토대가 있다.

때로는 지루하다고 치부되는 일상은,

삶을 지탱해 주는 단단한 뿌리가 된다.


삶이라는 토양을 붙잡고

하늘을 향해 나무가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뿌리 덕분이다.


삶의 쳇바퀴에 오르는 다람쥐는 말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쳇바퀴에 오르네."


건강한 생각을 바탕으로 탄탄한 삶의 바퀴를 굴려 가는 다람쥐는 말한다.


"오늘은 어떤 식으로 쳇바퀴에 올라서 볼까?"


일상을 마주하는 태도를

일상을 여행하는 태도로,

삶이란 여행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


쳇바퀴에 매몰된 다람쥐와

바퀴를 타고 여행하는 다람쥐의

차이를 만든다.


로라와 함께 Artscience museum의 전시회를 구경한다. 


Artscience museum의 전시회에 있으니 동화 속에 온 기분이 든다.

형형색색 빛으로 가득 찬 전시장은 어릴 적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동심의 세계에서, 동심의 존재인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에 괜스레 코가 찡해진다.


동심이라는 공간에 들어올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희망이라는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직접 그린 비행기 그림이 화면으로 보이는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느껴진다.



로라와 함께 센토사섬을 여행한다. 


다음날, 로라와 함께 센토사섬을 여행한다.

바닷가를 수영하며 그저 멍을 때리고,

모래사장에 누워 인공 야자수를 바라본다.


평화를 걸쳐서 여유를 흠뻑 적시고 나니

온몸으로 내게 오는 그 무엇도 사랑할 준비를 마친다.


이 순간을 사랑해.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


흰색의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지는 노을과 함께 행복이라는 맛으로 음미된다.


"로라, 너는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언제야?"


"지금 이 시간.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가 좋아.

해가 조금씩 지면서 공기가 차분해지는 느낌이 좋더라고"


흰색의 스케치북 위,

노을이란 물감에 번져 구름에 닿는다.

바다 위로 펼쳐진 팔레트에서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를 들이마신다.


오늘의 여행을 마친 우리는

느낀 감정과 순간을 나누며

가라앉은 공기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저 정글을 걷고,

호수를 바라보며,

카야 토스트를 나눠 먹고,

섬을 보며 멍을 때리며 보낸 오늘.


로라와 함께 보낸 센토사섬의 순간을 돌아보며

이 순간. 같은 노을 앞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는다.

놀랍도록 잔잔함 속에서 벅찬 감정이 올라온다.


행복은,

여행은,

가만히 지는 노을 앞의 공기를 음미하는 것이다.

잔잔함 속의 벅찬 감정을 느끼다 

로라에게 질문한다.


 

"로라, 네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뭐야?"


내 삶의 이유는 내가 받아온 무한한 사랑 때문이야. 
나는 내가 받아온 모든 경험에 감사하려고 노력해.
 받아온 사랑과 삶을 경험할 기회를 받고 있잖아.
이게 없었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을 거야.





나에게 있어 싱가포르는 너무나도 완벽한 나라이다.

완벽함에 오히려 낯설고 이상함이 느껴진다.


쓰레기, 노숙자 하나 없는 거리를 걷다 보면, 영화 세트장에 온 느낌이 든다.

'청렴하다'와 '독재국가'를 같은 문장에 놓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치료용이 아니면 껌도 반입금지라는 사실 자체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센토사 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층 버스에서 싱가포르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언제나처럼 말도 안 되게 깨끗한 거리를 보며 로라에게 말한다.


"때로, 싱가포르에 있으면 영화세트장에 온 거 같아. 너무 완벽해서 말이야. 너무나도."

"Sometimes, I think I'm in the place for filming because it's too perfect. TOO PERFECT"


로라는 자신도 싱가포르에 온 순간부터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다면서 대답한다.


"너무 완벽하긴 해 (Too perfect).

그렇지만, 오늘 우리의 하루는 꽤나 완벽했지(pretty perfect)."


완벽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 여행이 참 좋다.

불완전한 주말 아침의 늦잠과

늦잠 후 멍 때리며 느끼는 여유가 사랑스럽다.


눈떠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지나간 인연을 추억하고,

그러다 조금 눈을 감고 다시 무언가를 떠올리는.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We a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 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우리는 인생이라는 삶을 시간여행 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 대사 일부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은 

원하는 시간으로 여행한다.


그는 실수를 되돌리기 위해, 

사랑을 얻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곤 한다.


그리고, 삶의 이유를 깨닫기 위해

어제 보낸 일상으로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본다.


어제, 지하철 옆 승객의 헤드셋 사이로 들리는 성가신 소리는

오늘, 출근길을 즐겁게 하는 음악이 되고,


어제, 종업원으로부터 바쁘게 낚아채던 커피지만

오늘, 커피 뒤로 상냥하게 인사하는 종업원을 발견하며


어제,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직장 로비지만

오늘, 지나가다 잠시 멈추어 로비 천장을 바라본다.


주인공은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았지만,

어제와 결코 다른 삶을 보냈다.


지루하며 반복적인 일상이라는 날을

일상이라는 여행을 보낸 여행자가 되었다.


우린 매 순간을 여행하고 있다.

일상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우린 그 일상을 시간여행 하고 있다.


일상이라는 여행,

삶이라는 여행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이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omn.kr/1p5kj : 오마이뉴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전 15화 하늘을 날고 싶은 소년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