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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Aug 15. 2024

하늘을 날고 싶은 소년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

인도네시아 바탐에서 만난 제키


눈을 뜨면 어김없이 나빌라 방 주홍빛 천장이 나를 맞이한다.

도로 위에 늘어선 야자수, 덜덜거리는 오토바이의 엔진소리, 빵빵 울리는 경적, 조금 허물어진 건물을 감싸는 약간의 습기와 뜨거운 태양. 자바섬 여행을 마치고 다시 바탐으로 돌아왔다. 


나빌라 이모의 TV 소리와 함께 근처 모스크 기도 소리도 들린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기도 소리가 조금은 자장가처럼 달콤하게 들리기도 한 이유는,

나빌라와 함께 보내는 일상이 포근하기 때문일까.

양동이에 물을 퍼 화장실에 다녀오니 못 보던 브라우니가 책상에 놓여있다.





"나빌라, 이 빵 뭐야?"









"제키가 너 먹으라고 갖다 놓았어."







전날 밤, 제키와 처음 만난 순간. 우리는 함께 배드민턴을 쳤다.

전날 밤, 나빌라 제안으로 친구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어두컴컴한 차 안에서 처음 만난 제키는 내게 쑥스럽게 인사한다.

정규교육 과정 이후 배드민턴 채를 한 번도 만진 적 없는 내게 제키는 일일 체육 교사가 되었다.

우린 한 시간 넘게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배드민턴을 쳤다.

경기가 박빙인 이유는 제키가 나를 배려하기 때문이란 걸 알지만,

제키도, 나도 그 사실을 모른척하며 우린 땀을 흘렸다.




제키가 취미로 시작했다가, 부업이 된 "kripsyummy"제과점의 명물, 브라우니다

어두운 갈색을 띠는 브라우니는 굽자마자 내게 갖다 주었는지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다.

아침에 배달된 제키의 따근따근한 마음.

내가 먹어본 브라우니 중 지금까지도 단연 최고의 맛이다.


바삭한 겉과 촉촉한 속을 음미하고 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다.

브라우니 안을 흐르는 초콜릿을 향유하고 있는 내게 나빌라는 말한다.





"제키가 너에게 바탐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고 싶다네."








그렇게 일일 배드민턴 짝꿍은 일일 마을 친구가 된다.

제키의 오토바이는 하루 동안 절친인 나를 바탐 곳곳에 데려다준다.


"데이지, 바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갈게"


생애 처음으로 오토바이에 오른 순간.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우왕좌왕한다.

낯섦에서 나오는 불안감은 바퀴가 도로의 흐름을 탄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바뀐다.

도로 양옆을 채우는 야자수와 열대기후를 가득 메운 적운형 구름을 바라보며 

온몸을 스치는 바람에 맡긴다.


자유를 꼭 껴안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일까.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는 순간만으로 나는 온전히 다른 세계에 내맡겨진다.


금방이라도 발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아스팔트 도로는 아슬아슬한 긴장을 남긴다.

자유라는 바다 위에서 바람의 흐름을 유유히 느낀다.



어린아이처럼 잔뜩 신이 난 채로 방방 뛰어다니는 나를 보며 제키는 말한다.


"너의 에너지는 나를 행복하게 해."


소년 시절의 꿈은 가진 그에게서 소년 얼굴에서 보이는 웃음을 보자니 나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품은 사람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좋다.

꽃을 보았기에, 봄을 볼 수 있듯이

제키를 보았기에,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우린 서로의 에너지를 공유하며, 바탐에 짙은 추억을 남긴다.

뜬금없이 삶을 묻는 나에게 제키는 순박함이 묻어난 웃음으로 자신의 우주를 내준다.



활주로를 딛는 비행기는 소년의 마음속으로 



Tbing tinggi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제키는 어릴 적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다. 

그는 마을 근처 공항의 비행장에서 활주로를 딛고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곤 했다. 

소년 제키는 하늘을 비행하는 동체를 동경했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가정아래 자라며 자신이 기계를 다루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깨닫는다. 

자연스레 기술자를 꿈꾸며 대학에서 항공 기술을 공부한다.


▲ 제키는 승객이 안전하게 비행하는 걸 상상하며 항공기 정비를 한다. ⓒ Rezeki Manik

 그는 최근 정비 작업을 마친 엔진 앞에서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을 보여준다. 항공기의 심장인 엔진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던 소년을 동력 삼아 수많은 이들이 하늘을 날게 해 준다. 


그의 웃음이 순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질주하는 소년이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일까. 


그는 항공기 기술자가 되어 사람들이 하늘을 날도록 도와주고 있다. 자신이 정비한 항공기가 곧 활주로에 오를 거라는 그의 들뜸은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짐을 싸는 소년의 들뜸과 겹치게 보인다.


비상하는 동체에 압도된 듯,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물었다. 




"이곳에는 역사적이고 흥미로운 장소가 많아 지식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사는 게 좋아.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친절하고 유쾌해."


인도네시아어를 알아듣지 못한 나는, 후에 뜻을 이해한다.

자국을 사랑하고,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을 사랑하는 그에게서 삶의 이유가 있던 걸까, 고민한다.

혹시나 내 질문을 잘못 이해한 걸 수 있기에, 제키에게 다시 삶의 이유를 물어본다.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싶다는 답과 동일해.
그러나, 삶 적이 측면으로 대답하자면,

내 삶의 이유는 내가 만나는 많은 이에게 행복을 전하고 싶어.
오래 살며 사람들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알리며 그들을 돕고 싶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소년은 항공기를 정비하며 행복을 전하고 있다. 

이 순간에도 창공을 누비는 여러 항공기 사이로, 어린 소년의 꿈이 보인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품은 청년은 여전히 스스러운 웃음으로 새로운 꿈을 비행한다. 





제키는 떠나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요청한다.

특히 좋아했던 인도네시아 간식, 오 닦오 딱 (바나나 잎에 싼 어묵)이 곁들여진 따뜻한 밥상이 차려진다.

식당은 무더운 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히려고 털털거리는 선풍기를 세워둔다.



제키와 함께 오딱오딱(otak otak)과 밥으로 배부르게 인도네시아 마지막 만찬을 한다.


선풍기도 당해낼 수 없는 불 앞에서 요리사는 땀을 흘리며 나시고랭을 그릇에 담는다.

오늘도 분주히 살아가는 바탐 사람들 사이로 제키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제키 우리가 다시 볼 날이 올까?"


"훗날 내가 정비한 비행기가 한국으로 가는 직항이나 경유가 생긴다면, 타고 갈게."



"그래, 그때도 어린 시절 꿈처럼, 하늘을 날고 있어야 해."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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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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