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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무슨 일이 있어
전화한 건 아니야

요르단 와디럼 사막을 향한 길에 만난 택배운전사

by 여행가 데이지


황홀했던 페트라의 밤을 보낸 뒤

요르단이 품은 또 다른 보석, 와디럼 사막을 향해 간다.


페트라와 와디럼은 요르단 필수 관광지이기에

두 장소를 오가는 차가 많은 거라는 나의 예상으로

도로 위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페트라 (위)에서 와디럼(아래)의 거리

트럭을 몰고 가던 운전사는

문을 열며 성적인 수치심을 주기도 하고


나를 태워준 한 버스 기사는

가던 중에 갑자기 돈을 달라며 말을 바꾼다.


어느새 히치하이킹에 익숙해진 나는

요르단의 고약한 운전기사들의 만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씩 저무는 여명 앞에서 고민은 무시할 수 없다.


'그냥, 이곳에서 자야 할 수도 있겠는걸'


중간에 내린 조그만 마을,

데이터도 터지지 않은 채

오늘 밤 벌어질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간절히 도로 위 운전자들을 바라본다.


그 순간, 검은색의 차량에서 택배기사가 나온다.


"와디럼!!! 와디럼!!!"


나의 간절함이 느껴졌는지,

운전자는 타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넨다.


20230711_192420.jpg?type=w966 와디럼으로 향하는 나의 구세주들



택배를 위해 와디럼 쪽으로 내려가 아카바까지 간다는 운전자 친구들.

그들은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쭉 택배 하며 내려오는 중이다.


'앗싸!'


저녁에는 와디럼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희망은

그들을 향한 미소로 드러나고,

그들은 내게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푼다.


와디럼으로 향하는 여정 위에서

깜짝으로 내게 과자와 음료수를 사 오기도 하며

음료수를 전부 쏟은 내게 괜찮다며 웃기도 한다.


그런 그의 친절이 감사하고 미안하면서도

차창 너머로 지는 노을과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마음에 간직한다.



20230711_192415.jpg?type=w966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짧은 영어로 이야기하다 번역기를 통해 말을 건네는 친구들.

머나먼 한국에서 온 당찬 여행객이 신기한 모양이다.


한 친구는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나를 소개한다.

나아가 시시콜콜 이야기를 가족과 나눈다.


"무슨 이야기한 거야?"


"별거 아니야. 그냥 지나가는 말들이지.

우린 그냥 별 이야기 없어도 영상통화를 하곤 해."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보더라도

언제나처럼 가족과 영상 통화한다는 그.


어쩌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가족과 영상통화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일까.

그런 그의 모습이 신기하다.


동시에,

그런 그의 모습이 좋다.


"내게 가족은 정말 중요한 존재야.
내 삶의 이유이자, 나의 힘이지."



20230711_194325.jpg?type=w966 조금씩 지고 있는 노을. 와디럼을 향해 가면서



그는 뒤이어 내게 말한다.



"오랫동안 연애하던 전 여자 친구가 있었어.

그는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지.


최근에 SNS를 통해 그가 결혼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바람피운 그 사람과 결혼을 올렸더라."


누구보다도 가족과 애정을 중시하는 그에게서

과거 애정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예상하지 못한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아픔의 시간을 오랫동안 견뎌오며

무뎌진 시기를 맞이하는 듯하다.



20230711_192410.jpg?type=w966


매일 보는 가족임에도

잊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것.



어쩌면 그가 견뎌온 수많은 아픔의 시간은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족의 힘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친절 덕분에 무사히 도착한 와디럼 사막은

무엇보다도 뜨거운 애정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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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와디럼 사막에서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omn.kr/1p5kj : 오마이뉴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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