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와디럼 사막을 향한 길에 만난 택배운전사
황홀했던 페트라의 밤을 보낸 뒤
요르단이 품은 또 다른 보석, 와디럼 사막을 향해 간다.
페트라와 와디럼은 요르단 필수 관광지이기에
두 장소를 오가는 차가 많은 거라는 나의 예상으로
도로 위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트럭을 몰고 가던 운전사는
문을 열며 성적인 수치심을 주기도 하고
나를 태워준 한 버스 기사는
가던 중에 갑자기 돈을 달라며 말을 바꾼다.
어느새 히치하이킹에 익숙해진 나는
요르단의 고약한 운전기사들의 만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씩 저무는 여명 앞에서 고민은 무시할 수 없다.
'그냥, 이곳에서 자야 할 수도 있겠는걸'
중간에 내린 조그만 마을,
데이터도 터지지 않은 채
오늘 밤 벌어질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간절히 도로 위 운전자들을 바라본다.
그 순간, 검은색의 차량에서 택배기사가 나온다.
"와디럼!!! 와디럼!!!"
나의 간절함이 느껴졌는지,
운전자는 타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넨다.
택배를 위해 와디럼 쪽으로 내려가 아카바까지 간다는 운전자 친구들.
그들은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쭉 택배 하며 내려오는 중이다.
'앗싸!'
저녁에는 와디럼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희망은
그들을 향한 미소로 드러나고,
그들은 내게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푼다.
와디럼으로 향하는 여정 위에서
깜짝으로 내게 과자와 음료수를 사 오기도 하며
음료수를 전부 쏟은 내게 괜찮다며 웃기도 한다.
그런 그의 친절이 감사하고 미안하면서도
차창 너머로 지는 노을과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마음에 간직한다.
짧은 영어로 이야기하다 번역기를 통해 말을 건네는 친구들.
머나먼 한국에서 온 당찬 여행객이 신기한 모양이다.
한 친구는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나를 소개한다.
나아가 시시콜콜 이야기를 가족과 나눈다.
"무슨 이야기한 거야?"
"별거 아니야. 그냥 지나가는 말들이지.
우린 그냥 별 이야기 없어도 영상통화를 하곤 해."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보더라도
언제나처럼 가족과 영상 통화한다는 그.
어쩌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가족과 영상통화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일까.
그런 그의 모습이 신기하다.
동시에,
그런 그의 모습이 좋다.
"내게 가족은 정말 중요한 존재야.
내 삶의 이유이자, 나의 힘이지."
그는 뒤이어 내게 말한다.
"오랫동안 연애하던 전 여자 친구가 있었어.
그는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지.
최근에 SNS를 통해 그가 결혼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바람피운 그 사람과 결혼을 올렸더라."
누구보다도 가족과 애정을 중시하는 그에게서
과거 애정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예상하지 못한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아픔의 시간을 오랫동안 견뎌오며
무뎌진 시기를 맞이하는 듯하다.
매일 보는 가족임에도
잊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것.
어쩌면 그가 견뎌온 수많은 아픔의 시간은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족의 힘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친절 덕분에 무사히 도착한 와디럼 사막은
무엇보다도 뜨거운 애정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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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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