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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는 걸 믿지 마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자흐라

by 여행가 데이지
20230802_062624.jpg?type=w966 카파도키아의 열기구가 뜨지 못한 뒤, 우리끼리 그저 경치를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누군가가 생각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생각난 누군가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고,

그이를 앞으로 더 소중하게 대하자는 다짐을 준다.


소중한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공유할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더욱 행복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시공간을 관통하는 온기는 두 배가 되고

너와 내가 나눈 시공간은 영원히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된다.


IMG_4651.JPG?type=w966 카파도키아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카파도키아에 머물며 만난 호스트 라티파와의 이야기

▶ 첫 설렘의 기억을 간직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티파 집에서 모로코에서 온 자흐라와 함께 묵는다.

눈을 뜨니 내게 손을 뻗으며 잠든 자흐라가 보인다.

긴 속눈썹과 아름다운 눈을 가진 자흐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따뜻하고 나긋한 그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자흐라는 예쁜 눈과 목소리를 가진 채로 내게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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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가 뜨는 모습을 보기 위해 우린 열기구 장소로 향한다. 자흐라(오른쪽), 라티파(가운데)와 나(왼쪽)



자흐라, 라티파와 함께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길에 나선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열기구 특성상,

두둥실 떠오르는 열기구를 볼지 안 볼지 모르는 상황.

껌검한 밤하늘에 둥실 떠오르는 열기구를 보길 소망한다.


불확실한 상황으로 걷기 시작하는 우리.

자흐라는 새벽 공기를 맡으며 말한다.



"난 어스름 지는 이 새벽공기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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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는 결국 뜨지 못한다.


열기구의 부풀어 오르던 바람이 실속 없이 빠진다.

열기구에 오르기를 바라던 관광객도 아쉬움을 이끌고 도시로 돌아간다.

열기구를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잠시, 자흐라는 말한다.



"그래도, 카파도키아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그의 말처럼 카파도키아 풍경은 고요해진 적막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열기구를 보지 못한 채 돌아간 관광객들 사이로

끝까지 남아있던 프랑스 가족과 이야기가 닿는다.

자흐라는 프랑스어로 능숙하게

자차를 끌고 프랑스에서 튀르키예로 온 가족과 이야기 나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그에게 멋지다고 말한다.



"모로코는 프랑스 식민지였어.

많은 모로코인은 프랑스어를 일상어로 쓰고 있지.

모로코 언어보다 프랑스말이 더 우아하고 배운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많아."


수줍게 웃으며 답하는 자흐라의 목소리는 얇고 따뜻하다.

부드러운 말씨는 자흐라를 더욱 빛나게 한다.

그 길로 우리는 카파도키아 시내로 돌아가는 동안 서로의 우주를 공유한다.

짧은 시간의 대화에서 나는 자흐라가 얼마나 똑똑한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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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를 향한 여정은 끝났지만,

새벽 일찍 출발한 여정이기에, 여전히 도심은 아침 태동을 조금씩 부리고 있다.

출근한 라티파와 헤어지고

자흐라와 단둘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튀르키예에서 인생 첫 여행을 보내고 있는 자흐라는

아랍어 과외를 하면서 카파도키아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 아래에서 나고 자란 자흐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올바르게 성장했다.


교육 중에서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인증하듯이

자흐라는 훌륭하고 섬세한 모습을 보인다.


이슬람이 국교인 모로코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자흐라는 이슬람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자흐라,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이 대학교수가 될 수 없는 게 사실이야?"


지금껏 똑똑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내는 자흐라이기에

여성이 교육권 진출을 함에 있어 옹호하는 태도를 보일 거라 예상하며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헤로워 보이는 자흐라는 다소 충격적으로 대답한다.


"데이지, 네가 이 말을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솔직히 말할게.


여성은 남성보다 조금 더 감정적이라고 생각해.

일례로 이혼 소송을 하는 여자 변호인은 소송을 진행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대.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지.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여성보다 남성이 지적인 부분에서 우월한 건 사실이야."


언제나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사긋하게 배려하는 그에게서 느낀 지혜는

인류가 만들어온 종교적 가치 앞에서 잠식되는 걸까.


동시에 여성 문제와 관련해 자흐라가 다른 의견을 가질 거라 생각했다.

그가 이슬람 문화를 기반으로 답하는 사실은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무언의 놀람 속에 있는 중,

문득 '살 빼야지'라고 생각한 순간이 떠오른다.



'살을 빼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회가 만들어온 미적 기준에 나를 맞춘 거잖아.


나는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디서 생긴 거지?


자흐라가 여성이 감정적이라고 생각하듯이

나도 결국 사회가 만든 기준이 옳다고 생각한 거잖아.'



한 사회가,

한 문화가,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

나아가 삶을 지배한 영향을 느낀다.

동시에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충격받은 이유는

지혜로운 자흐라가 종교가 만든 틀에 갇혀 말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사회가 만든 틀에 갇혀있음을 깨달아서이구나.


IMG_5046.jpg?type=w966 우린 함께 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자흐라는 튀르키예에서 존경받는

아타튀르크에 가진 다른 시각을 말한다.



"아타튀르크*는 이슬람 문화를 박해한 인물이야.

터키 영토도 사실 지금보다 더 컸는데,

아타튀르크로 인해 지금 영토가 된 거지."



*아타튀크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 공화국을 설립한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리더십 아래에서 튀르키예는 여러 가지 근대화 개혁을 추진하며, 세속화, 교육 개혁, 여성의 권리 증진, 언어 개혁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식백과 일부


아타튀르크는 아랍권 문화에서 개방적 문화로

튀르키예를 바꾼 훌륭한 지도자라고 나는 자연스레 생각했다.

그러나, 자흐라의 말을 듣고

이전 생각은 알게 모르게 서구권 사상에 주입되었음을 깨닫는다.



이내 나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을 여행하며 느낀 답답함을 말한다.


"꼬이고 꼬인 양 국가 간의 관계에서

피해받는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혹은 제삼자들을 실제로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어.


도무지 두 국가를 만족하고, 세계의 평화를 가져올 방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흐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그건 무엇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야.

원래 그들의 땅인 팔레스타인에게 돌려주는 게 타당하지.

다시 되돌려 받는 것 외에 해결 방안은 없어."



그는 지금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말하며 결국 눈물을 흘린다.

심각하게 자행되는 전쟁 속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여행하며 느낀 답답함과 알 수 없는 무력감을 해소할 곳이 없던 나는

민감한 주제로 인해 자흐라의 눈물을 보이게 만들면서도

그에게 묻는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뭘까?"



자흐라는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믿지 마.

그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을 하잖아.

지금 내가 하는 말도 믿지 마.

네가 스스로 책을 읽고,

기사를 찾고 다양하게 흡수해.

양쪽으로서 글들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보며 너만의 생각을 정립해.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





라티프 집에서 마지막 날, 라티프가 만들어준 인도네시아 요리를 먹으며



라티파 집에서의 마지막 날,

자흐라와 함께 우치라 성 나들이에 간다.

마땅한 교통수단 없는 우리는

애용하는 이용 수단인 히치하이크를 시도한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4-10-31_%EC%98%A4%ED%9B%84_6.10.56.png?type=w966 히치하이킹 계획의 각 위치는 네브사르(1번째), 우치사르(2번째), 괴레메(3번째), 아바노스(4번째), 이다.


네브사르에서 아바노스로,

아바노스에서 괴레메로,

괴레메에서 우치사르로 이동하는 계획에서

자흐라는 첫 히치하이크라며 잔뜩 기대를 머금는다.


치켜든 엄지손가락은 몇 분 걸리지 않아 앙카라에서 온 부녀와 만난다.

이혼을 한 부부 중 남편은 일 년에 한 번씩 카파도키아에서 딸을 만난다.

오늘은 딸을 만난 날이며 카파도키아 드라이브를 가는 중이다.


우치라성에 간다는 모로코인과 한국인을 보며

아버지와 딸은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물론이죠!"


도로 한복판에서 만난 인연을 붙잡고

우린 우치라성 외에 카파도키아 일대를 함께 여행한다.

차 뒷좌석에 올라 자흐라와 함께 신나 하며 들뜸을 공유하는 우리에게 부녀는 묻는다.


"아름다운 일출을 보러 가지 않을래?"



아름다운 일출을 위해 우리가 향한 곳은 러브밸리.

이름마저 낭만으로 가득한 러브밸리는

결혼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백 년 계약을 약속하는 이들,

일출로 하루를 마무리하러 온 이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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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끝에서 수많은 기암괴석 뒤로 사라지는 해를 기다린다.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청중으로 일출이라는 무대가 시작된다.

마치 분수 쇼처럼 햇살은 붉게 기암괴석을 물들인다.


발그레 피어오른 암석을 바라보며 나는 말한다.


"꿈을 갖는 건 정말 황홀한 일이야.

그 꿈을 종이에 적는 건 엄청난 힘을 가졌지.

꿈을 가시화해서 잊지 않도록 하는 거야."



자흐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 나도 꿈이 있어.

나는 사람들에게 이슬람의 가치를 더 알리고 싶어."



어느덧 일출의 어스름이 기암괴석을 온전히 덮어버린다.

단풍처럼 붉게 물든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자흐라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나는 신을 전도하기 위해 존재해.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일몰을 보고 있으면서도
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라 생각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할 수 있는 만큼 알라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석양은 단단한 기암괴석을 녹일 듯이 붉게 기암괴석을 물들인다.

한 편의 가을 행진이 펼쳐지는 일몰을 보며 우린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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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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