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쿠사다시에서 만난 에게
"와! 한국인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뻐!
우리 부모님도 한국인을 정말 좋아해. 아마 나보다도 더 좋아할 거야."
쿠사다시에 가기 전에 호스트를 요청하니
호스트에게는 한국인을 처음 보게 될 거라며
설레며 나를 반긴다.
호텔에서 일하는에게는
부모님이 우리를 반길 거라며 주소를 알려준다.
히치하이크와 정신없이 흐르는 순간들로 지친 우리는
쿠사다시에 도착해 무거운 배낭을 이끌고 에게 집 앞에 도착한다.
에게는 가족과 함께 쿠사다시(Kuşadası)에 산다.
대학생이었던 그는 2022년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에라수므스)을 보낸 뒤
대학에 자퇴서를 날렸다.
"공부하기보다, 여행을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였어.
난 여전히 어리고 에너지를 가졌으니까!"
그가 결정한 삶의 원리는 단순하다.
일하고 여행하기.
그는 쿠사다시 호텔에서 여름 동안 일을 한 뒤
한 해의 나머지는 여행을 다닌다.
겨울을 여행으로 가득 차게 보내고 나면
여행을 통해 배운 것과 충전된 에너지로 일을 한다.
하루는 가족들 다 같이 터키 Buyuk Menderes National Park로 나들이하러 간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함께 음악 취향을 공유한다.
일본 노래를 즐겨 듣는 그는 언어, 노래, 여행 등 다양한 문화를 새롭게 배우는데 관심이 많다.
"내 첫 번째 여행은 핀란드였어.
그 당시 돈이 없어서 카우치서핑을 처음 시작했지.
그때 돈을 쓰지 않고 사람을 만나며 여행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다음 여행으로 벨기에, 네덜란드에 갈 때도 같은 사실을 느꼈지. 그때 깨달았어.
여행은 내가 어딘가에 가서 무얼 본다기보다,
여행이라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한 거라고."
젊은 몸에 성숙한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는
나와 똑같은 여행 방식과 삶의 태도를 가진다.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어."
파도의 그림자는 투명한 그물망처럼 반사되어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든다.
그물은 다이아몬드 그림자를 겹겹이 층을 구성해
바닷속 모래 배경을 채운다.
심심하기만 해 보일 법한 모래 풍경을 가득 채운 배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바다에 몸을 맡겨 물길이 이끄는 대로 간다.
에게 가족의 자리와 멀리 벗어난 곳에 도착하니
저 멀리, 바닷속 구멍이 난 듯한 공간이 보인다.
조금 더 나아갈지 말지를 고민하며 알 수 없는 구멍에 두려움과 흥미를 느낀다.
조금씩 다가가 보니 물살에 몸을 맡겨 춤추는 해초가 보인다.
무성히 춤추는 해초로 어두워 보인 부분이 구멍 같은 착시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장엄하다.
고요하면서도 아름답다.
정어리 떼의 향연이 펼쳐진다.
바다로 들어오는 빛은 정어리를 비추고
정어리는 은빛을 반짝이며 자신을 뿜어낸다.
공연의 막이 내리고 팡파르가 터질 때 나오는 은박지처럼
정어리는 바다라는 무대에서 떼를 지어 빛나는 팡파르가 된다.
수없이 반짝이는 바닷속 은박지를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바닷속 세상은 수없이 넓고,
새롭고,
내가 속한 세상과 전혀 다른 낯섦을 가진다.
바다는
그 위대함 앞에서,
그 아름다움 앞에서,
겸손함을 알려준다.
그런 바다를 나는 두 팔 벌려 사랑한다.
바닷속 비행을 마치고 햇살에 몸을 맡긴다.
수영복에 흡수된 물이 오후 햇빛에 빠져나가는 따뜻함을 느낀다.
에게 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푸르른 하늘을 즐긴다.
"대학교를 관둔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을 거 같아.
남들과는 전혀 다른 길일 테고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잖아."
"그렇지.
그렇지만 난 현재를 살기로 생각했어.
사실 삶을 다 살아지더라. 대학을 나오든 나오지 않든.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나는 어리잖아! 너도 그렇고."
그의 굳건한 삶의 신조는 여러 삶의 태도로 연결된다.
미래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채식자가 된 지 어언 4년 차.
언어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는
스페인어도 독학으로 배우고, 한국어에도 관심을 보인다.
"삶에서 네가 준 만큼 받게 되는 게 이치야.
너에게 돌아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네가 준 만큼 돌아가게 될 거야."
그의 모토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와
자신 안의 목소리를 듣는 용기를 느낀다.
싸이클링을 좋아하는 그는
훗날 자전거로 유럽 투어를 할 거라며
웃음을 보인다.
투명할 정도로 깨끗한 쿠사다시 바다는
그의 젊은 열정을 투영하는 듯하다.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인생의 도전이야.
도전이 없으면 지루해.
모든 게 쉬워도 재미가 없잖아.
인생은 특별해야 하고, 특별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해.
그래야 인생은 살 수 있는 의미와 가치가 있는 거야."
우린 다 함께 저녁을 먹고 쿠사다시 시내를 구경한다.
바닷가 마을답게 바다를 배경으로 모인 사람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거리 공연을 한다.
조그만 바닷가 마을의 편안함,
친절한 사람들과 환대,
그리고 이 순간을 함께하는 소중한 인연들까지.
행복하고 감사한 쿠사다시의 하루에서
작게 스며있는 이 피곤함 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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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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