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드라거노브트시에서 만난 클레어와 닐
두바이 여행을 하면서 만난 독일 커플이 있다.
커플은 자전거만을 타고 유럽에서 시작해 두바이를 지나고 있는 여행 중이었다.
우린 함께 두바이 곳곳을 여행했고, 패스트푸드로 마지막 만찬을 하며 그들의 여행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자전거로 여행을 하다가도 자신이 했던 유기견 보호소 봉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때 동물운동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어릴 적 유기견보호소 봉사에 가던 순간을 떠올렸다.
곧 유럽여행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에게 부탁해 관련 정보를 입수했다.
독일 커플이 갔던 보호소는 불가리아 드라고노브느시(Dragonovsti)에 위치한 유기견 보호소였다.
터키에서 한 달을 보내며 두바이 여행이 잊혀갈 즈음
문득 유기견 보호소가 다시 떠올랐다.
한때 동물보호 길거리 캠페인도 나가고
동물권리 책도 섭렵하며 동물운동에 힘쓰던 나는
대학 교정을 밟은 순간부터 동물권의 일부도 내 삶에 들어오지 않게 했다.
일부로 그런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물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 버린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중학교 때만 해도 동물보호가를 장래희망으로 적어내던 내가
동물보호에 대한 목소리를 안 내는 건 둘째치고
동물보호에 대한 목소리를 안 듣는 걸까?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싶다.
어릴 적 굳게 믿고 외쳤던 목소리를 다시 마주하고 싶다.
바람은 자연스레
EverydayStray 홈페이지에 들어가 봉사 신청을 누르는 손짓으로 이어진다.
보호소에 도착하자마자 낯선 이를 반기는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
마침 아침 산책을 다녀온 클라라와 닐, 봉사자 콘스테인이 돌아오는 길이다.
휠체어 한 강아지에게서 울리는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퍼지면서 함께 들어선다.
처음 본 낯선 이를 향해 달려온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데
왜인지 모르게 울컥함이 올라온다.
들어와 차 한잔을 마시며 닐과 클레어와 인사를 나눈다.
생각보다 커다란 보호소 크기에 놀라며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묻는다.
"내 인생 전부를 바쳐서 했어."
짧지만 강렬한 닐의 대답은 강아지를 향한 그의 사랑을 알려준다.
인생을 바쳐 하나의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 길이 결코 쉽지 않기에 닐과 클레어에 대한 삶이 궁금해졌고,
첫 만남부터 나는 연신 질문을 시작한다.
"강아지는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야.
이보다도 더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닐과 클레어는 2018년에 영국에서 처음 만났다.
강아지가 없는 삶을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닐과 클레어는
언제나 삶 중심에 강아지가 있었다.
닐은 영국에서 학대와 고통받는 강아지를 보호하는 단체에서 봉사하며
강아지 공장 반대 운동을 펼쳐왔다.
클레어 역시 동물 복지를 위해 봉사와 캠페인을 펼치며
강아지와 가까이 살아왔다.
그들은 함께 불가리아 유기견 보호소 봉사를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들이 본 충격적인 장면 때문이다.
"길 강아지들은 짧은 쇠사슬로 음식과 물, 머무는 곳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어.
거의 숨만 붙들고 있는 거나 죽은 채로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었지."
닐과 클레어는 버려지고, 총에 맞는, 혹은 몸의 일부가 절단된 강아지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길 강아지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장면 앞에서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고통에 대한 연민은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영국을 떠나기로 다짐한 그들은 2019년 불가리아로 넘어왔다.
이후 길 강아지를 구조하고 보호하는 단체인 'Everydaystray' 설립했다.
Everydaystray는 불가리아 비영리조직으로
2023년에 정식 허서를 받아 자치단체로 성장했다.
구조된 강아지를 국경너머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400마리 이상의 강아지가 새로운 가족을 만나도록 도왔다.
일주일간 EverydayStray에 머물며 클레어와 닐은 봉사 방법을 알려준다.
가령 강아지별로 어떤 종류의 밥을 줘야 하는지, 강아지는 각각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를 배운다
.
강아지 한 마리 한 마리를 생명으로 대해온 그들의 삶이 느껴진다.
그들은 봉사자에게 머물 아파트를 따로 제공하면서도
본인은 보호소에서 강아지와 함께 머문다.
2년 넘게 보호소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살아왔기에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보호소 내의 강아지 이름을 다 익혀갈 즈음, 하루는 도시 훈련을 갔다.
자동차와 사람 소리에 경계를 갖는 강아지에게 도시 환경을 적응시키기 위한 훈련이다.
함께 마을을 걸으며 닐은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강아지를 돈으로 보고 있어.
그러나, 강아지는 우리의 동반자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존재지."
문득 그의 낡아서 해진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운동화는 강아지에 쏟은 그의 삶을 말하는 듯하다.
동시에 아침 산책 중 보았던 클레어의 피부가 떠오른다.
그의 피부는 무언가 병에 걸린 듯한 붉은 반점이 있었다.
해진 운동화와 붉은 반점이 강아지를 위해 바쳐온 그들의 삶을 말하는 걸까.
한평생 강아지를 위해온 그들이 만들려는 사회는 어떤 가치를 품고 있을까.
닐과 클레어가 지내온 삶을 해진 운동화 구멍에 투영하며 닐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개는 언제나 내 삶에서 필수적인 존재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아이들이 내 삶의 이유이지.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어느덧 흘러버린 일주일 봉사를 알려준다.
보드라운 강아지의 털을 타고 햇살을 맞이하는 순간, 닐과 클레어의 삶을 떠올린다.
자신이 굳건히 믿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강아지가 강아지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그들의 삶을 존경한다.
봉사의 마지막 날, 보호소를 나오며 닐과 클레어는 여행의 건투를 빌었다.
"돈에 대해서 생각하지 마. 돈은 너를 행복하게 하지 않아.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하는지를 찾아.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 꿈을 따라가."
봉사 내내 강아지 각각을 존재 자체로 마주하고, 강아지에게서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더욱이 닐과 클레어의 삶을 통해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
닳고 구멍 난 옷을 입고서라도 진정으로 자신이 행복하게 하는 것을 쫓아가는 삶,
그 삶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란 것을 말이다.
EverydayStray 유기견보호소의 봉사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자,
내게 살아갈 또 다른 힘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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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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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