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에서 만난 시팟
3월의 타이베이는 셔츠 한 장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따뜻한 날씨가 연속이다.
그저 거리를 걷는 행위만으로도 가벼운 옷차림에 살랑거리는 바람은 좋은 기분이 되어 내게 스며든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인도네시아 친구 Siti Fatimah(이하 시팟)과 타이베이에서 만났다.
시팟은 대만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보내고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학위로 대학교수 준비를 하고 있다.
히잡은 그의 상냥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표정을 돋보이게 한다. 에너지 넘치는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반겨주며 터진 댐에서 유수가 나오듯 청산유수 말을 쏟아냈다. 삶에서 진하게 우러져 자동으로 반사된 친절도 보인다. 그의 얼굴에 번진 웃음을 따라 형성된 주름이 이를 증명한다.
시팟은 거리를 걷다 조금이라도 예쁜 조형물이 나오면 연신 사진을 찍어주었다.
대만의 사진을 볼 때면, 아름다운 관광지의 모습보다
나를 위해 사진을 찍어준 시팟의 아름다운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타이베이의 거리가 더욱 특별한 잔향으로 은은하게 남은 이유는, 우리가 함께 그 거리를 걸었기 때문이다.
밝게 빛나는 이와 함께 있으면 자신도 빛이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팟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대만,
특유의 튀김과 밀가루 맛을 음미하며,
시팟이 다니는 대학교 교정을 밟으며
내가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빛은 대만의 따사로운 햇볕에 더욱 발광했다.
우리는 자전거로 대만 시내를 누빈 후
시팟이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인 국립타이완사범대학교에 다다랐다.
무슬림인 시팟은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한다.
대학 교정에 도착한 시간 역시 기도 시간이기에 시팟은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후 조용히 인도네시아가 가진 사회적 문제를 토로했다.
인도네시아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만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다.
무슬림은 매일 정해진 기도 시간이 되면 기도해야 한다.
신과 가깝게 지내는 무슬림의 뿌리를 보여준다.
그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종교와 밀접한 삶을 살다 보니
자신의 감정과 정신적 문제를 종교에 잠식되는 경우를 언급한다.
자신이 감정적으로 아픔이 있을 때 사람들은 ‘네가 기도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말하기 일쑤다.
그는 정신, 감정의 영역과 종교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처럼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 때 치료를 받아야 한다.
시팟은 자신이 생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Loveyourself Indonesia’를 설립했다. ‘사람들의 건강한 마음’을 위해 설립되었다. “행복은 다른 이로부터 오지 않는다. 행복은 너의 마음으로부터 온다.”라는 회사 신조 아래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준다. 종교로부터,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내고 상처를 줘.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거야. 우리는 그들에게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알려줘. 때로 괜찮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괜찮다고 답하지만, 사실 그들은 괜찮지 않아. 내면에서 울고 있을 거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어려워하는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콘텐츠를 만들고 기사를 작성한다. 마음 치료와 관련해 학교 출강을 가고, 사람들을 상담한다.
마음 치료를 받기 위해 전문가를 찾기에는 형편이 여의찮은 사람에게 그의 회사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을 돕고자 회사를 만들었기에 회사로부터 봉급을 받은 적이 없다. 미소 뒤에 펼쳐지는 넓은 마음의 동기가 궁금해졌다.
“네가 선행을 하면 그 선행은 돌아온다. 그게 내가 회사를 세운 이유야. 이건 종교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야.”
덧붙여 그는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 배운 이야기를 꺼낸다. 그의 아버지는 죽음을 앞에 둔 모두에게 세 가지를 기억하라고 말씀했다. 첫 번째,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람을 도와라. 두 번째, 네가 돈이 있다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라. 세 번째, 네가 돈이 없지만 에너지를 가졌다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라. 그의 언니 역시 고아와 가난한 가정을 위해 무료로 학교를 제공하고 있다.
언제나 따뜻한 포옹을 가진 시팟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행한 자살 시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나 1등 자리를 차지했던 언니 뒤로 시팟은 매 순간 비교당했다. 비교는 쌓이고 쌓여 시팟의 감정을 고이게 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다 보니 통제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그는 울 수 없었다. 끔찍한 사고현장을 봐도 그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그 당시 신을 간절히 믿었고, 기도했고, 자살을 시도했다.
학사를 졸업할 때쯤 그는 자신의 감정이 올바르지 않다고 깨달았다.
병원에 찾아가 약을 처방받고 그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이후 그는 깨달았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었다.
시팟이 돕는 사람은 과거의 자신이었다.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울컥함이 밀려온다. 그의 아픔을 작게나마 안으며 그에게 물었다.
"시팟, 너의 삶의 이유, 너의 데이지는 뭐야?"
그는 잠시 미소를 지었지만, 이미 많은 생각을 해왔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돕고 싶어.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겠니?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돼.
선행은 언젠가 자기에게 다시 돌아올 거야.
친절을 베풀면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줄 거라 믿는 시팟의 모습은 '나눔'이란 글자를 형상화한 듯하다.
내면의 행복이 주위의 행복으로 번지게 될 거라는 그의 믿음을 나도 함께 믿고 싶어졌다.
아니, 원래 알고 있었지만, 어렴풋이 잊어갔던 사실을 다시 한번 믿고 싶어졌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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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