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구나 May 14. 2024

만약에 다시 볼 수 있다면

반드시 사랑한다고 말할 텐데


베란다에 1L 생수병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생수병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물이 아닌 '잡곡'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잡곡은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


아마도, 이 잡곡들은 바퀴 달린 수레에 꽁꽁 묶여서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고 왔을 것이다.

우리 '엄마'와 함께...


잡곡밥을 한번 해 먹으려 마음먹자, 먹먹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확산되어 밀려온다.

무슨 잡곡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물어볼 곳이 없다.


생수통에 담긴 잡곡을 계량컵에 부으려고 하니 생수통에 검은색 매직으로 쓴 글씨가 희미하게 보인다.


'귀리'

'현미'

'보리'


마치 갈색 껍질을 입고 있는 것 같은 귀리는 껍질을 벗겨야 하는 것인지 그대로 밥을 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왜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는 잡곡을 이렇게 많이 가져왔냐고 투정 부려야 하는데...

엄마의 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더 이상 '전화 찬스'도 '만능 검색창'도 없는 나는,

검색창에 '잡곡밥 만드는 법'을 검색하고 글을 보고

밥 통에 잡곡을 담고 흐르는 물에 벅벅 씻는데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잡곡밥

딸들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맛있는 잡곡밥. 맛있게 먹자.'



만약에 다시 볼 수 있다면 반드시 사랑한다고 말할 텐데...






이전 04화 너를 보내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