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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구나 Nov 28. 2024

대기업 다니면서 택시 자격증 딴 이유

하방 방어도 중요합니다.


얼마 전에 이직하기 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형님 이직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형님께서 이직을 하게 된 이야기도 감명 깊게 들었는데,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것도 인사이트가 있는 말씀이였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형님 : 너네 만약에 회사에서 잘리면 당장 할 거 있어?

라구나 : 없죠... 바로 쿠팡 해야겠지요...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책을 꼭 써야지 하고 살고 있지만,

글 쓰는 것을 전문적인 '돈벌이'로 하는 경우에 얼마나 승산이 있을지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병행하면서 기반을 쌓는게 좋습니다.


형님 :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택시기사 자격증' 따면 쿠팡은 안 할 수 있겠더라고.

라구나 : 택시기사자격증이요?

형님 : 웅, 따는데 돈도 거의 안 들고 자격증 따기도 쉽고... 그런데 만약에 내가 이직해서 잘 안된다고 퇴직금 가지고 무작정 사업할 수는 없잖아.

라구나 : 그렇죠, 형님.

형님 : 근데, 이거 택시기사자격증 있으면 바로 다음 날 택시회사 취업해서 일할 수 있어

라구나 : 그래요 형님?


요즘 택시회사에서 일하시던 기사님들이 모두 '배달업'으로 넘어가면서 택시회사가 구인난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형님 : 내가 이직해서 잘 안되서 할 게 없어서 택시 기사해도, 난 엄청 멋지게 옷 입고 멋있게 할 거야.


평소에도 멋지게 옷을 잘 입으시는 형님입니다.

형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단순히 겉으로 멋진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형님 : 그리고 내가 중국어랑 영어는 좀 되니까 주로 외국인들 대상으로 택시를 하는 거지. 그럼 쿠팡 하는 것보다는 경쟁력이 있지 않겠냐?

4년제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 다녔고 중국어/영어가 가능한 택시 기사라고 하면 앞에 두 개는 몰라도 언어만으로도 꽤나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는 택시기사로 느껴집니다.


형님 : 너네도 한번 도전해 봐~어렵지 않으니까​


이 모임 후에 저랑 같이 형님을 봤던 다른 형님은 일찍이 자격증을 땄고, 저는 '게으름'을 핑계로 미루다가 지난 주에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는 쿠팡으로 '택시 기사 문제집'을 하나 사서 하루나 이틀정도 아침에 슬쩍슬쩍 기출문제만 보는 수준으로 준비하였습니다.

70문제 중 60%만 맞으면 되는 시험이라 별 부담은 없지만,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가면 재수 없을 경우에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시험 보려고 휴가를 내긴 했지만 휴가도 좀 남아있고 쉬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직장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버스를 타고 구로구 오류동 시험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제 고향과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지금 사는 집에서 가려니까 꽤나 멀었습니다.

날씨도 생각보다 춥더군요...


자동차 검사하러 '성산자동차검사소'는 자주 가봤는데, 시험 보러 온 것은 처음이네요.



저는 인터넷으로 시험 접수를 하였습니다.

송파랑 노원에도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숫자인 5번이네요.

이렇게 앉아서 컴퓨터로 시험을 봅니다.


화물/버스/택시가 같이 시험을 보는데 꽤나 많은 사람이 함께 시험을 봤습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쭉쭉 문제를 풀었는데 다 풀고서 애매한 문제들의 답이 다 틀렸다고 가정해도 떨어질 수준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바로 답안을 제출하니 결과가 나옵니다.


라구나 택시기사 자격증

합격과 동시에 대기장으로 내려가면 바로 자격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별거 아닌데 이거 하나 따니까 기분은 좋더군요...




그럼 이제 선배가 '택시기사 자격증'을 권유한 이야기에  제 이야기를 덧붙여 보려고 합니다.

아마, 제가 실제로 택시 기사가 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잘린다고 해도 현재 회사보다 처우가 좋지 않은 회사로 가면 취업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택시기사 자격증을 딴 것은 제 인생의 하한점을 정해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울 촌놈이라 몸 쓰는 일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쿠팡'을 하면 하루 이틀 일 하고 일주일은 병들어 누워지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하다보면 적응할 수도 있겠지만요...


제가 혹시라도 회사에서 짤리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순간에 옳지못한 선택을 하지 않게 해줄 '장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퇴직금으로 무작정 치킨집을 차리거나 하는 선택을 방지해준다는 것이지요...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번다고 해도 '택시 기사'를 하면서 준비할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딱 그 정도의 가치입니다.


따기 어려운 것도 아니야,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야...

따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 친한 지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인 : 이제 다 택시 자동화될 건데, 그거 따서 뭐해요~​


물론 그렇게 될 날이 언젠가 오겠지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것도 다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지인에게 장난스럽게 대꾸하였습니다.


라구나 : 그럼 어차피 다 죽을 건데, 왜 살어?


상하방이 닫힌 직장인에서 직장을 타의로 나가게 되었을 때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몹시 태로운 상황입니다.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회사 안에서는 상하방이 닫혀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상하방이 열려있고 저는 그 하방을 막아두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그리고 별건 아니지만 따니까 기분도 좋고 아주 작은 성취감도 들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상방을 얼마나 높게 가져갈 것인지

즉, 어떻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과 함께 인생이 잘 안 풀렸을 때에 어떻게 방어할 것이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택시 기사'하는 것이 '망한 사람들이 하는 일'로 오해하시는 분은 없으시기 바랍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준비를 하느냐'와 '아무 준비를 하지 않느냐'의 차이를 두고 싶은 것입니다.​


요즘 대기업 할 것 없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다고 하면 무엇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월급만큼 나오는 배당이 있으신가요?

부모님께서 하시는 가업을 이어받으실 수 있으신가요?

다주택자라 부동산을 일부 정리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저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인가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더 잘될 수 있는 방법도 준비하고

더 잘 안되도록 할 수 있는 방법 모두 말입니다.


상하방이 닫힌 직장인은 직장 속에서 미래를 준비해야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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