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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나를 기다린다.

by 낭중지추


직장에서 전자레인지에 냉동된 떡이나 빵을 넣고 해동하고 데워서 먹을 때가 많다. 2분 내지 3분 정도에 시간을 맞추지만 해동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전자레인지 근처에서 서성이다 2~3분을 못기다리고 전자레인지의 해동이 중단시킨다. 그래서 일부러 그 짧은 시간에 할 일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컵을 씻는 일이나 책상을 정리하는 일이다. 신경을 딴데 돌려야 애써 해동이 한 번에 완료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번 더 전자레인지의 다이얼을 돌려야 한다. 콩나물 국을 끓일 때도 그렇다. 자기 성미를 못이겨 냄비 뚜껑을 열었다간 비린내를 마주하기가 쉽다. 몇번의 실패를 거듭하고서야 뚜겅을 열지 않는 인내심을 배우기도 한다. 이렇게 짧은 시간도 못기다리는 나에게 긴 기다림을 요하는 일은 하늘과 땅이 바뀌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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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에 꽃이 피는 데 3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지 2년여가 지났다. 대체 언 땅이 녹기나 하는지. 땅 속에서는 생명들이 살아나 있는지. 저 나무의 가지 안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대체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는건지 나무를 꺽어서라고 보고 싶었다. 뿌리는 잘 내리고 있는지 궁금하고 심지어는 살아는 있는지 편지라도 보낼 수 있으면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빨리 자라서 꽃을 피우라고 굿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의 절박한 마음도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변한다고 하는 데 기다리는 이 나무에는 꽃이 필 기미가 없다. 정물화처럼 가만히 멈춰서 있다. 살아있는 생명력이 이 나무 안에서는 멈춰서 버린 것 같다. 시간이 흘러야 꽃을 볼 수 있다고 한 말이 거짓말인것만 같아 속상했다. 꽃이 피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 순간 순간은 견딜 수 없었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하루 하루는 참 지루했다. .




내 시선이 부담스러워 꽃을 안피우는 건 아닐까 내 시선이 아니꼬와서 꽃을 숨기고 있는건 아닐까. 나를 부러 괴롭히려고 꽃을 피울 힘을 아예 삭제해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나의 시선은 꽃을 부러 외면하기도 한다. 꽃을 피기를 기다리는 내 마음 조차 숨긴다. 하지만 마음은 더 꽃에 꽂힌다. 오매불망 꽃을 기다리는 나는 이제 지쳐간다. 아니 지침으로 나를 가장해본다. 지쳐간다는 마음이 꽃에게 전달되면 혹시 나를 좀 봐주지 않을까 하는 약자의 마음이다. 이제부턴 내가 더 힘을 내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계산적인 지침이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간 탓인지, 드디어 거칠었던 들도 부드러워졌다. 척박하고 푸석푸석하던 모양새에서 만지고 싶은 흙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 손으로 흙을 솕아내면 손가락 사이로 건조하게 흩어지던 흙들이 이제는 꽤 습기도 있고 온기도 느껴진다. 들이 변하니 나무도 건강해진것 같다.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다는 안도의 마음이 들어선다. 그간의 노고가 씻은 듯 사라진다. 들도 시간이 필요했고 나무도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게 된다. 모든 생명은 다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짧은 지식과 욕심으로 나의 시간으로 재단해서는 안됨을 알게 된다. 나의 시간으로 너희를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결국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뭔가를 기다리는 일은 이렇게 지난한 일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건 인간의 숙명이다. 들도 나무도 시간의 변화를 알 것이고 계절의 변화를 알것이다. 때에 맞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숙명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선은 들과 나무와 꽃의 생명력을 믿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며 지낼것인가를 정하는 정도이다. 전자레인지의 다이얼을 중간에 중단시키지 않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나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애절함, 절박함, 걱정을 거름삼아 오늘 하루, 지금 시간을 잘 숙성시키는 것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들도 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나무도 나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꽃도 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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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나무와 꽃






[출처]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나를 기다린다.|작성자 낭중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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