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오늘은 차인표 이야기다. 세상 쓸데 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고, 세상 무의미한 것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차인표가 가진 여러 생활습관 가운데 하나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머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의무방어전 같은 안부를 묻는 답정너식의 통화가 아니라 진짜 무슨 오래전 헤어진 애인을 만난듯이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이십년이상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차인표에게 왜 그렇게 하는지를 물어봤다. 차인표의 대답이다.
" 오래전에 동생이 죽었다. 동생의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내가 너무나 무력하게 여겨졌다.. 더욱 괴로운건 나보다 더 슬퍼하는 부모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아무일도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깨달았다. 살아계실때 충분히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충분히 사랑한다고 말한 기억, 충분히 같이 대화한 기억, 충분히 같이 웃던 기억만이 그 누군가가 사라진 후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남는 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 그 전의 데면데면했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부모님과 많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
행복의 조건이 없는 건 아니다.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건강도 유지되어야 하고, 좋은 인간관계가 있어야 하는 건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식주가 해결되어도 여전히 불행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고, 건강한 상태는 비록 아니어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관계가 행복의 필수요소라고도 하지만 나홀로 자신의 공간에 있어야 더 행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걸 보면 행복하기 위해 꼭 어떤 상태에 도달해야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 조건부 행복은 사실 행복이 아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지 않아도 되고, 어떤 상태가 되어야만 얻어지는 그런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은 어떤 상태건 행복하겠다고 마음 먹는 그 순간 얻어지는 그런 것이다. 행복은 우리가 결심한 순간 얻어지는 그런 파랑새 같은 것이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잘 보기만 하면 행복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며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우리는 무에서 시작된 존재이고, 언젠가는 무로 돌아갈게 분명하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무한히 많은 선택지들이 있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냐는 순전히 본인의 마음이다. 어떤 선택지건 나름의 길이 다 있다. 동생의 죽음 앞에서 나는 죽음에 대해 사유했고, 아주 오랫동안 내면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일은 나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나의 염세적인 성향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반면 차인표는 동생의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다른 결심을 한 것이다. 남아있는 가족들과 살아있는 동안 행복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된것이다. 어느 한 지점의 생각과 판단이 시간이 흐르면서 큰 차이를 낳게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하고 삶의 행복의 선택을 결심하는 순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출처]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행복|작성자 낭중지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