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 선 Oct 30. 2023

어린 나를 만났을 때 해야 하는 것

나를 재양육하는 방법 2

인왕산을 오르며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친구는 나를 재양육하는 방법이란 글을 읽은 후, 상처받을 당시의 자신을 회상하며 글을 써 내려봤다고 전해주었어요. 적어 내릴수록 "아, 난 그때 아무도 없었구나" - 비로소 그때의 감정과 상황이 인정되었지만, 당시의 자신과 동떨어진 느낌이라 이제 뭘 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위로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 시절의 나와 너무 멀어진 느낌이 들 때는, 당시의 내 모습을 시각화하고 마주하는 "내면아이" 명상법을 다시 한번 추천합니다. 무의식 속에 잠재한 것들은 이렇게 '존재'로 개념화하여 직면하면 보다 쉽게 내면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고,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기도 훨씬 수월하거든요. 내가 애써 억눌러온 상처는 무시한다고 저절로 치유되진 않잖아요. 그 고통에서 일시적인 방편으로 마비시킨 것뿐이니까.


몇 년 전 제 단짝친구에게 이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어요. 친구가 들려준 후기는 제 경험과는 많이 달라서 놀랐습니다. 그녀가 어린 자신을 마주했을 때, 그 어린아이와 서로 멀뚱멀뚱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고 해요. 무표정으로 그저 서로를 감정 없이 바라보았대요.

"너 누구세요?" 하는 느낌으로.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보다 남들, 특히 부모님의 의견을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온 친구였습니다. 삶의 대부분을 현실도피해 온 그녀는 너무 오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모른 체하며 살아왔기에 -한마디로 그녀의 내면아이를 너무 오래 무시해 왔기에- 서로 낯선 사람이 돼버린 것이었어요. 미움도, 원망도, 아늑함도, 친근함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관계. 그냥 - 이방인.


한편 제가 맨 처음 "나의 어린 모습"을 상상했을 때 마주한 건 차갑게 식은 물에 젖어 웅크려 우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다가가려고 하니까 움찔 놀라며 점점 더 얼굴을 팔 사이로 파묻었어요. 전 제 자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학대해 왔거든요. 내 외모, 내 선택, 내 과거 하나하나를 탓하고, 폄하하고, 구박해 왔기 때문에 저의 내면아이는 겁에 질려있었어요. 나는 나를 두려워했어요. 제가 섣불리 다가가서 안을 수도, 위로를 해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 명상을 할 때마다 아이옆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끔은 울고, 가끔은 가만히 앉아있고. 그 아이를 내가 미워하지 않는단 걸 - 난 나를 미워하지 않는단 걸 - 나 자신을 학대하는 걸 그만두고 싶단 걸 내면아이가 느낄 때까지.


몇 년이 걸렸지만, 아이는 점차 밝아졌고, 저를 믿어줬어요. 어느 순간부턴 아이를 안아주는 상상과 함께 울어줄 수 있었고, 무릎에 앉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어요. 하지만 분명 처음부터 가능했던 일을 절대 아니었습니다. 나를 아주 소중하게,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어요. 약속을 지켜야 했으니 안 좋은 자기 대화와 습관에 다시 빠지면 숨을 고르고, 다시 나의 생각을 재정비해야 했습니다. 내면아이에게 사과하며 상황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해줬고, 사랑한다 했어요. 자기 사랑을 배우는 걸 포기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친구에게도 지금은 그냥 옆에 있어주라고 했어요.

내면아이도, 지금 그녀 자신도,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까지. 서로를 알아볼 때까지.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제가 외로움에 바스러질 것 같을 때, 전 그저 누가 옆에 있어주길 바랐거든요. 실용적인 조언도, 실질적인 도움도 좋지만,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하는 훈수도, 걱정도, 위로의 말도 다 감사하지만 그저 내 감정들을 소화해 내는 외로운 시간들에 옆에서 묵묵히 지켜줄 누군가를 꿈꿨어요.


내 과거의 상처를 보듬어주려면, 나를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굳이 뭘 해야 하지 않습니다. 오롯이 슬퍼하지 않길 바랐던 우리 옆에 있는 것만으로 시작해도 내 안에 상처와 외로움은 크게 위로받아요.


지금 제 내면아이는 저의 일부입니다. 굳이 명상을 하려 하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와요. 내가 아플 때, 원하는 게 있을 때, 상처가 욱신거릴 때, 영문도 모르고 감정에 잠식되는 게 아니라 내가 날 안정시킬 수 있는 날이 옵니다.


더 자세한 내면아이 명상법은: 나를 재양육하는 방법 글에 있습니다.

+ 자신의 얘기를 허락해 준 두 친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