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을 허락받았다.
오늘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어젯밤까지 아이 엄마에게 바가지를 긁혀서 멘털이 살짝 나갔다.. 아이 엄마도 내가 왜 허락을 했지! 라며 믿을 수 없어했지만 금방 체념했다. 난 참 이기적인 남편이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다른 부분에서 희생하려 한다. 아내가 하기 힘든 일은 최대한 도맡아 하고 내 잠 줄여가며 일하고+ 가사까지 도와주고 있다. 오늘 여행을 떠날 때 중요한 건 명확하다. 바로 '너무 신나 있지 말 것. 적당히 아쉬워하며 그냥 집에서 쉴 걸 그랬다.'란 느낌을 줘야 한다. 쉽진 않겠지. 남자 10명이 놀러를 가는데 어떻게 재미없을 수 있겠는가. 탱커, 공격수, 마법사, 힐러 등 다채로운 조합이라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 난 사회자 역할이기 때문에 대본을 살짝 짜놨어야 했는데 저녁에 너무 신나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몸을 사렸다.
항상 여행 전 공문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발송해 줬는데, 이번엔 실패했다. 어젯밤 유부남 친구 한 명이 여행 톡방에 톡을 남겼다. "위기다. 가정의 불화. 여행을 못 갈 수도.." 젠장. 네가 안 오면 나도 명분이 사라진다고!! 제발! ㅋㅋㅋㅋ 아내에게 이 친구 와이프도 허락해 줬네라며 살살 꼬셨었기 때문에 이 친구가 없는 순간 최소 한 달은 구박받는다. 제발 가정의 평화를!!! 이러고 기도하고 있었다. 1시간 뒤쯤 연락이 왔다. "휴 세이프. 가정의 평화" 다행이다. 이제 무엇을 살지 고민이다. 다른 몇 명은 오늘 야간 근무를 마치고 바로 오는 거라 어제 출근을 안 한 애들끼리 장을 보기로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코스트코가 있어서 우선 내가 좋아하는 코스트코.. 미국 소를 잔뜩 사갈 예정이다. 뭘 살지 정해놓지 않는 타입이라 우선 가볼 예정! 크게 소고기, 밀키트, 술 이렇게 정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사야지! 벌써부터 설렌다. 아내가 지금 자고 있는데 일어날 때 절대 잊지 말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밤새 수유를 해 지친 표정으로 물 한잔 주며 말해야겠다. "일어났어~?" 피곤해서 여행은 가기도 힘든데 이미 약속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줘야 한다.
ㅎㅎㅎ.. 이틀간 여행을 위해 홀로 육아를 했다. 아내의 짐을 최대한 덜어주기 위해 혼자 아이를 케어해 봤다. 오롯이 혼자 아이를 케어한 건 처음이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딴딴이가 얌전히 있었음에도 피로도가 많이 상승했다. 이렇게 혼자 아이를 돌보니 아내가 얼마나 힘들지 안쓰럽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복직하고 싶다고 했을까. 오늘도 느낀다. 그래도 좋은 와이프를 만나서 내 자유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나도 아내가 어딜 간다고 하면 항상 허락하지만 여자 입장은 또 다를 수 있다. 결혼하고 남편이 외박하고 오는 일은 불쾌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을 존중해 주고 거절을 하더라도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을 지켜준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나와 결혼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30이 된 지금도 우린 20대의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내가 잘하지 않으면 이런 자유는 유지될 수 없다. 항상 선을 지키고 실수를 할 땐 진심 가득한 반성을 해야 한다.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해.
이제 곧 떠나는데 아이를 재우고 딴딴이에게 엄마를 잘 지켜주라고 약속을 했다. 두 주먹을 맞대고
"파이팅! 아들. 네가 잘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기회가.. 있어." ㅎㅎ제발.. 아이의 원더윅스 기간이 피크를 넘어선 거 같아서 다행이다. 딱 이 시기에 휴식기(?) 비슷하게 올 것 같았는데 어제부터 신기할 정도로 얌전해지고 울음도 금방 멈췄다. 초저녁에 잠투정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막수를 끝내고 토닥이며 재웠더니 6시간 30분의 긴 잠을 잤다. 매우 행복.. 새벽에 아이가 왜 안 일어나지?? 궁금해서 내가 먼저 일어나다 보니 컨디션이 좋다. 아니면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는 감정의 엔도르핀이 생성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약속 시간은 11시 30분. 와이프랑 아이가 일어나려면 2시간 정도 남았으니 청소해 두고 아침을 준비해야겠다.
와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