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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Dec 02. 2023

딸의 거짓말.

  어제 저녁,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큰 아이가 물었다.

(딸) "나 내일 OO이랑 시내 나가서 놀아도 돼?"

(나) "응. 그래도 되는데 뭐 하려고?"

(딸) "포카 사러 갔다 와서 집 근처 코인 노래방 갈 거야."

  

  며칠 전 OO이랑 학교에서 다퉜다는 말에 화해했나 보다 싶어서 다녀와도 된다고 허락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동생에게 뭔가 속닥거리면서 이야기를 하는 딸이 보인다. 동생은 싫다고 투덜거리는 눈치이고 딸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저런 경우는 아들이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고 있을 확률이 100%이다.


  "뭔데? 동생한테 뭐 속닥이는 건데?"라고 물으니 아빠는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며 방문 밖으로 나를 내쫓는다. 뭐지? 잠깐의 시간이 지났는데 아들 녀석이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방에서 들린다.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소리를 질렀다.

  "둘 다 나와!"

  둘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첫째를 다그쳤다.

  "너 무슨 얘기해서 쟤 우는 거야?"

  입술을 앙다문 첫째는 말이 없다. 둘째에게 물으면 된다.


(나) "누나가 뭐라 그랬는데 울어?"

(둘째) "누나가..."

(첫째) "야! 말하면 안 되지!"

(나) "말해!"

(둘째) "누나가... ㅁㅁ누나랑 나가서 노는데 무슨 일 생기면 엄마 아빠한테 연락 안 하고 나한테 전화할 거라고... 그래서 내가 싫다고..."

(나) "OO이가 아니고 ㅁㅁ이랑 간다고?"

(첫째) "오래전부터 ㅁㅁ이랑 놀러 가려고 약속했었는데 엄마 아빠가 알면 안 된다고 할까 봐...."

(나) 분노의 사자후 시작.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첫째와 ㅁㅁ이는 2~3주 전부터 시내의 방탈출 카페를 가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다녀온 적이 있어서 우리는 당연히 허락도 해주었고 날짜에 맞추어 데려다 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주말을 앞둔 며칠 전, ㅁㅁ이가 독감에 걸렸다며 학교에 오지 않아 방탈출 카페 방문 계획은 취소가 되었다. 그런데 2일 정도 지나서 ㅁㅁ이는 독감이 나닌 그냥 감기였던 것 같다며 다시 방탈출 카페를 가겠다는 거였다.

ㅁㅁ이가 독감이든 그냥 감기든 상관없이 큰 아이는 다음 주에 고대하고 고대하던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고, 얼마 전 감기를 심하게 앓았던 나의 증세가 단순감기인 듯했다가 독감처럼 고열과 심한 몸살이 와서 고생한지라 ㅁㅁ이가 다 낫기 전까지는 가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다. 차라리 수학여행을 잘 다녀와서 방탈출 카페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번 주말에는 가지 말라고 했더니 큰 아이는 OO 이와 다른 것을 하러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동생까지 거기에 협조하도록 강요한 것이었다.

  평소에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편이 되어줄 테니 거짓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라고 했었는데 아이에게는 그 말이 어떻게 들렸던 것인지 나도 모르게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나) "그래서 아빠한테 거짓말하고, 동생도 같이 거짓말하라고 시킨 거야? 너 내가 거짓말만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지?"

(첫째) "쟤도 엄마 아빠 모르게 컴퓨터 게임하고 친구들 집에 데려오고 했었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둘째가 엄마 아빠가 없을 때 몰래몰래 컴퓨터 게임을 하기도 했고, 우리가 없을 때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데려왔었나 보다. 또 한 번 나는 무너진다. 뒤늦게 퇴근한 엄마의 등장으로 일단 중단되었지만 멘털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믿고 있었던 딸의 거짓말에 한 번, 둘째에 대한 나의 관대함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아빠로 비쳤음에 또 한 번, 무섭지 않은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는 나의 노력이 아이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겠다는 허무함에 또 한 번...


  결국 첫째 아이는 그렇게 방에 들어가서 저녁 내내 한 번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커가면서 나에 대한 마음을 더 닫으면 어쩌나 하는 아빠의 두려움을 알고 있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아이에게 더 속상하고 마음이 쓰리다.


  아이와 마주치지 않으려 토요일인 오늘 일찍 출근해서 병원 옆 카페에 앉아있다. 뭔가 마음이 외롭다. 하루만 껄끄러우면 좋겠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빨리 알고 사과해 주면 좋겠다. 나도 내 좀스러움과 편협함을 빨리 알고 사과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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